가정방문 오시는 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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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금년부터 학부형(자모님)이 되고 용이가 학교에 가는 모습이 대견스러워지자 학교에서는 가정 방문한다는 소식이 왔다.
나와 애 아빠는 처음 당하는 일이라 기뻐하면서 어찌할 바를 몰라 계획부터 짜기로 했다.
우선 집안청소, 집밖의 청소는 말할 것도 없고, 대접은 밀크로 할까? 커피로 할까? 과자는 어떤 종류로 할까? 과실류는 어떤 것이 좋을까? 그릇도 어떤 무늬의 모양이 좋을까?
밤새껏 계획을 쌓았다가는 허물고, 그리고는 다시 쌓고…이러기를 얼마나 오래 했는지 모른다.
정말 모처럼 처음 당해보는 일이라 최대한으로 정중하게 대접하고 싶었다.
마침내 D-데이는 예고도 없이 찾아왔다.
그날 따라 안 오시는 모양이라 생각하면서 일찍 저녁준비를 했었다.
묵은 김치를 씻어 멸치를 넣고 찌개를 만들었고, 팥과 밀쌀을 넣어 잡곡밥을 해서 애들과 같이 찌그러진 소반에 올려놓고 저녁밥을 먹는 찰나 대문소리와 함께 선생님이 들어서신 것이다. 그 순간 나는 망설였다. 아니, 당황했다. 그리고 어찌할 줄 모르는 행동을 하다가 이왕 이렇게 되었으니 하는 수 없다고 생각하고 말았다.
정성껏 준비한 다과를 가져오려고 해도 선생님은 굳이 마다하시기에 그러면(애들과 같이 먹던 그대로의) 저녁밥이라도 같이 들자고 했다. 그런데 이것이 어찌된 일일까? 저렇게 잘 잡수실 줄은 정말 몰랐다.
한 공기, 두 공기를 잡수시는 것이다. 애들은 선생님의 무릎 위에 올라 예의 없이 마구 재롱을 피우며 논다.
부끄럽고 미안스러웠다.
마침내 나의 얼굴은 홍당무가 되었으면서도 한편 기쁘기도 했다. 김영순<서울용산구용산동2가8번지 8통2반 김정섭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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