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신 북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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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어느새 꽃철을 맞는다.
오는 25일쯤이면 제주도에서 벚꽃이 피기 시작한다. 벚꽃이 한 잎 두 잎 흩날리면, 한쪽에선 복숭아 꽃망울도 방싯한다.
관상대의 「꽃 도표」를 보면 이달 말쯤 제주도의 꽃바람은 바다를 건너온다. 한반도는 그 무렵부터 색깔이 바뀐다. 마치 겨우내 싫증난 옷을 벗어 던지고 새 옷으로 갈아 입 듯, 원색의 지도가 펼쳐지는 것이다.
우리 나라의 개화 전선을 보면 위도 보다는 상당한 오차가 있다. 동에서 서로 꽃 전선은 기울어져 있다. 이 경사는 북상할 수록 심해진다. 필경 산맥의 흐름에 따라 기온의 차이가 나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 나라의 지형은 대개 동쪽의 태백산맥을 모체로 동에서 서로 가지를 펴고 있다.
그러나 지형 탓만도 아닌 것 같다. 가령 서해와 동해의 수심은 현저히 차이가 진다. 물이 깊은 동해안 쪽의 기온은 별로 「히스테리」가 없다. 그 뿐 아니라 난류가 북쪽 깊숙이 치밀어 올라간다. 강릉의 개화일이 4월 초순인데, 비슷한 위도상의 인천은 중순쯤이다. 무려 열흘 이상의 차이가 있다. 이것은 수심에 따른 기온의 차이 때문일 것이다.
산맥 하나를 사이에 두고 그 남북이 무려 5일간의 차이가 지는 것도 흥미 있다. 천기의 대세도 우람한 산맥 앞엔 무력한 것일까.
우리 나라의 지형은 산맥이 비교적 고르게 퍼져 있다. 지평선만 아득한 평야도, 산맥만의 주름살도 별로 없다.
자연이 그 만큼 풍성한 셈이다. 더구나 사계의 「리듬」이 선명해서 자연의 대 교향악을 이루고 있다.
그러나 자연은 황폐할 대로 황폐해 있다. 산들은 초라하게 헐벗고 있으며, 계곡마다 형해가 드러나듯 을씨년스럽다. 자연의 표정은 철이 바뀌어도 적막할 뿐이다. 계절은 바람결 속에서나 덤덤하게 오고 간다.
그러나 어느 날 시골길을 지나면서 문득 초가 너머로 환하게 핀 살구꽃을 보는 기쁨은 말할 수 없다. 자연 앞에서 도시인을 실로 한 시골뜨기에 불과하다. 자연과 함께 살고 있는 사람들보다는 도시인이 느끼는 그 자연 앞에서의 감동이나 경이는 말할 수 없이 크다.
이 허황한 도시의 파도 속엔 고향을 잊고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들은 자연의 변화 따위는 생각할 겨를도 없이 밀리고 밀리며 나날을 지내고 있다. 행복이 한 조각이라도 있다면 그것은 회색의 콘크리트로 포장된 행복에 지나지 않는다. 신문 한 모서리에서 보는 꽃의 사진조차 신기해 보일 때가 있지 않은가.
「자연에의 복귀」, 「자연의 회복」이야말로 현대인에겐 가장 애틋한 향수요 행복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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