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집」이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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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얼어붙었던 땅이 녹으면서 집을 짓는 공사가 더러 눈에 띄기 시작했다. 어떠한 집이 들어설까 하고 호기심이 가는 것은 비단 내 직업 의식의 탓만은 아니겠다. 가끔 이상한 모양의 집을 보면 주택의 본질에 대해 곰곰 생각하게 된다.
한동안 양식이라고 부르는 「슬라브」 집이 유행되었는데 이제는 한물간 것 같다.
어째서 양식이라고 부르게 되었는지 모르겠는데 구미의 주택에도 이런 것은 찾아보기조차 힘드니 말이다.
도둑 촌의 호화 주택이 지상에 심심치않게 소개되었는데 무슨 소용이 있어서 그렇게 큰집을 지었는지 알듯하면서도 모를 일이다. 혹시 자기의 재력과 권세를 과시하고 싶었을지도 모르지만 측은한 생각조차 든다.
요즈음은 또 불란서식이라 하고 화란식이라고도 부르는 「뾰족 지붕」이 더러 눈에 띄는데 누가 이름지었는지 건축가들도 모르는 이름이다.
구라파의 눈이 많은 지방에서는 이런 집들을 짓는데, 지붕에 쌓인 눈이 빨리 흘러내리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 나라는 눈이 많지도 않으며, 뾰족 지붕 밑의 다락방은 그 공사비에 비해 쓸모도 적다.
이처럼 집 모습은 자주 변하는데 몇해 있으면, 또 어떤 스타일이 튀어 나올지 궁금해지기도 한다.
옷은 몸에 맞추어 입을 줄 알면서도 집은 생활보다 크게도 짓고, 생활과는 아주 관계없이 유행 따라 짓기도 하고, 더러 자기 집 생활 아닌 딴 사람에 맞추기도 한다.
도둑 촌 주택 시비 이후의 일이지만 자기 집은 전세 주고 「맨션」에서 살기도 한다. 팔려고 할 때 값을 잘 받을 수 있도록 짓는 사람도 있다.
유행이란 곧 싫증이 나며 쉬이 변하는 것이고 유행에 맞추기에는 짐이란 너무도 값비싼 것이며 허세를 부릴 것도 아니다.
집을 짓기 전에 먼저 어떠한 생활을 하고 싶으며 어떠한 생활이 맞겠는가를 생각해야 하며 이에 따라 꾸민 것이 좋은 주택이다. 몇개의 방, 어떤 설비, 어떤 「스타일」 등은 그 다음 일이다.
구미의 양식을 본떠서 거실을 만들고 「쇼파」는 사놓았지만 여전히 가족은 안방에 모인다.
이러한 생활이면 차라리 거실을 없애고 안방을 크게 하는 편이 더 합리적이다. 또는 거실중심의 생활로 습관을 보다 나은 방향으로 바꿔야 한다.
집 안팎에 돌을 붙이고, 값비싼 재료의 전시장을 만들 여유가 있으면 차라리 부엌에 좋은 설비를 갖추고, 수세식 변소를 놓는 것이 더 현명한 길이다.
집을 지을 때는 저마다 그 목적이 있겠다. 막연히 집이 없으니까 짓는 것이 아니라 보다 넓게, 또는 보다 편리한 생활이, 보다 밝은 방이, 아름다운 뜰이 있는 등 저마다 이상적인 생활이 있겠다. 이 이상을 잊지 않고 그대로 살린 집이 자기 가정에 맞는 좋은 집이 될 것이다. 안병의 <건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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