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제" 안 한 북한과 6자회담은 곤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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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번스 리비어 전 미 동아·태 수석부차관보는 “지난 20년 간의 북한 비핵화 노력은 실패했다”고 했다. [박종근 기자]

“지금은 북한과 6자회담을 할 시기가 아닙니다.”

 미국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수석부차관보를 지낸 에번스 리비어(64) 전 코리아소사이어티 회장은 단호했다. “북한이 해야 할 숙제(homework)가 더 있다”는 게 이유였다. 그가 말하는 숙제란 “북한이 비핵화를 위한 ‘진지한 의사표시(Serious signal)’를 보여주는 것”이다.

 한국국제교류재단이 개최한 ‘아스펜(ASPEN) 외교장관 포럼’에 참석하기 위해 방한한 리비어 전 회장을 지난 15일 서울 테헤란로 파크하얏트서울 호텔에서 만났다. 이 포럼은 매들린 올브라이트 전 미 국무장관이 이끄는 각국 전·현직 외무장관들의 모임이다. 이번 서울 회의에는 40여 명의 전·현직 외무장관과 전문가들이 참석했다.

 리비어 전 회장은 2000년부터 3년 간 주한 미 부대사를 지낸 뒤 현재 미국 뉴욕에서 국제전략 관련 연구소인 올브라이트 스톤브릿지그룹의 수석국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지난 9월에는 베이징에서 열린 6자회담 당사국 1.5트랙(반관반민) 회의에도 참석했다. 그 자리에는 중국의 왕이(王毅) 외교부장, 북한 김계관 외무성 제1부상과 리용호 외무성 부상 등이 참석했고 한국과 미국은 학계 인사들을 보냈다.

 리비어 전 회장은 “6자회담의 최종목표는 북한의 비핵화인데 북한은 핵무기 포기는커녕 핵무기 보유국가 인정을 요구하고 있다”며 “대화를 위한 대화는 결코 하지 않을 것이라는 게 워싱턴의 확고한 입장”이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그는 북한이 평양에 문수물놀이장을 만들고 강원도 원산에 마식령 스키장을 건설하는 사업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북한은 실질적으로 평양과 그외 다른 지역이라는 2개의 북한으로 나눠져 있다. 이 같은 대규모 사업에 막대한 자금을 투자하는 것은 평양에 거주하지 않는 주민들에게 발전하는 북한을 보여주려는 쇼”라고 설명했다.

 그는 미국과 국제사회가 지난 20년 동안 쏟아부은 북한 비핵화를 위한 외교적 노력은 실패했다고 평가했다. 이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는 더욱 강력하게 북한을 압박해야 한다고 본다. 그는 셰익스피어의 비극 ‘햄릿’에 빗대 “(북한에게) 핵무기는 죽음, 비핵화는 생존”이라고 강조했다. 북한이 핵무기와 경제발전 중 한 가지만 선택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리비어 전 회장은 미국에서 대표적인 지한파 중 한 명이다. 그는 1969년 경기도 오산기지에서 군 복무 중 만난 한국인 여성(이미자씨)과 결혼했다. 부인 이름과 관련된 에피소드도 소개했다. “97년 평양을 방문했을 때다. 북한 외무성 관계자들을 만나 ‘내 아내의 이름이 이미자’라고 밝히자 모두 깜짝 놀라며 ‘남조선의 그 유명한 가수 이미자씨가 정말 부인이냐’고 물었다”고 한다. 이에 그는 “사실 동명이인이라고 실토해 좌중을 웃겼다”고 전했다.

글=이정헌 기자
사진=박종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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