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경이 서장인질 난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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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진주=곽기상·곽기순·이무의기자】10일 하오6시15분쯤 좌천에 불만을 품은 진주경찰서 보안과 교통계 백차운전사 이영재 순경(33)이 경찰서2층 경비과장실로 뛰어들어가 경비과장 강영환 경정(44)의 왼쪽가슴에 45구경 권총1발을 쏘아 그 자리서 죽이고 옆에 있는 서장실로 들어가 서장 박종영 총경(50)을 인질로 잡아두고 1백여 동료경찰관들과 11일 낮12시까지 18시간째 대치중이다.
이 순경은 강 과장을 죽인 뒤 총소리에 놀라 경비과장실로 뛰어들어온 KBS진주중계소 근무 장동은 기자(33)에게도 1발을 쏘아 오른쪽 허벅지에 관통상을 입혔다.
이날 이 순경은 경비과장실로 들어와 권총을 꺼내고 강 과장을 겨누는 순간 옆에 있던 경찰서장 지프운전사 이필규 순경(32)이 이 순경을 덮쳐 권총을 뺏자 이 순경은 『그것밖에 없는 줄 아느냐』면서 왼쪽가슴에서 다시 45구경 권총1자루를 꺼내 쏘았다.
이때 두발의 총소리를 듣고 막 문을 열고 서장실에서 나오는 박 서장을 앞세우고 서장실로 들어간 이 순경은 가족과 평소에 친한 사람들의 간곡한 자수권유도 뿌리치고 서장실 안 테이블 위에 청산가리를 탄 물컵을 얹어놓고 교통계장 김효영 경위(39)를 불러들여 강 과장의 비위사실을 부르는 대로 쓰라고 2시간에 걸쳐 대필을 시켰다.
이 순경은 경찰의 접근을 막기 위해 밤새 30여발의 권총을 쏘며 밤10시30분쯤 정석모 치안국장과의 40분에 걸친 전화대화에서 『경찰의 부정부패를 없애기 위해서 범행했다. 강 과장이 거의 매일같이 금품을 요구해 견뎌낼 수 없었다』고 말했다.
밤을 새우고도 별 피로한 기색을 보이지 않는 이 순경은 지난해 10월10일까지 1년 반 동안 진주서 보안과장으로 있던 강 과장의 심복부하노릇을 해왔는데도 돌봐주지 않아 11일자로 합천 경찰서로 발령날 것으로 판단, 이에 불만을 품고 범행한 것으로 경찰은 보고있다.
이 대치 극으로 총소리에 놀란 시민5백 여명이 경찰서주변에 몰려 경찰서 안의 동태를 지켜보고 있으며 경찰서앞길 통행이 막히고 있다.

<대치>서장실에 들어가자마자 이 순경은 박 서장에게 무장경관을 물러가게 하라고 요구, 50여명의 경찰관들은 안 보이는 곳으로 숨어서 대치했다.
이 순경은 하오7시쯤 『교통계장을 불러 달라. 내가 죽일 사람은 세 사람밖에 없다. 그 외는 다치게 하지 않겠다』고 고함치며 교통계장을 불러달라고 요구, 박 서장이 전화로 김 계장을 불러들였다.
하오8시30분쯤 김 경위가 서장실로 들어오자 종이를 꺼내 김 경위에게 준 뒤 『내가 부르는 대로 강 과장의 비위를 써라』고 대필을 강요, 2시간 가량 쓰게 하고 11시30분쯤 김 경위를 풀어주었다. 이 순경은 김 경위가 사온 정종을 물컵으로 연거푸 두 잔 마신 뒤 밖을 향해 또 한 발을 쏘아 건너편 길을 가던 이순대씨(32·봉곡동35)에게 찰과상을 입혔다.
박 서장이 자수를 권유하자 이 순경은 주머니에서 청산가리를 꺼내 자살하겠다고 위협도 했다.
이어 정석모 치안국장으로부터 온 장거리 전화에서 『경찰의 부정부패를 없애기 위해 범행했다. 강 과장은 지난해 10월10일까지 1년 반 동안 매일같이 돈을 요구했다. 나는 돈 나올 구멍이 없어 고민했다. 강 과장의 요구를 거절했다가 지난 6월에는 진양군 문산지서로 쫓겨가기도 했다. 우리 순경이 받는 봉급이 얼마입니까』라고 범행동기를 밝히고 『나는 50발의 실탄을 갖고 있읍니다』고 응수했다.

<이 순경 주변>이 순경은 제헌국회의원 이강우씨(납북)의 외아들로 시내에선 인심 좋은 교통순경으로 알려져 왔다. 진주시 상대동에 있는 그의 집에는 어머니 권차의씨(66), 부인 신정순 여인(31), 6살난 아들, 4살 짜리 딸, 누이동생 이정애 여인(29) 등 6식구가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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