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의용 소방관 30년|속초 소방대장 이창섭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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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불 구경은 좋아해도 불난 자리의 뒤치다꺼리를 좋아하는 사람은 없을 게다. 그러나 강원도 속초시 의용 소방대장 이창섭씨(54·속초시 중앙동468)의 일평생은 불과 물의 뒤치다꺼리를 하며 살아온 생애였다. 올해로 소방관 생활 꼭 30년째. 속초시 의용 소방대장자리만 맡아본지도 30년째나 된다. 의용 소방관이란 봉급이 있을 턱도 없다. 그렇지만 이씨는 『재해로부터 인명과 재산을 보호한다』 는 신념에 평생을 걸었다.
꼭두새벽 4시. 시골의 통근해제 「사이렌」소리와 함께 이씨는 자리에서 일어난다. 어두컴컴한 거리를 지나 경찰서근처의 소방대로 잽싸게 걸어간다. 장비창고 에는 소방차 4대, 16개 부문 2백17점의 각종 소방시설이 언제든지 쓸 수 있도록 정비되어있다. 이씨가 하는 새벽의 첫 일은 이 장비를 손수 정비하는 것. 장비가운데는 그가 지난 70년 각고 끝에 고안한 자동무인 방수사다리가 놓여있다. 「파이프」를 이어 만든 이사다리는 조립이 간편하고 견고한게 특징. 소방차의 「엔진과 전지를 사다리에 연결, 그 위에 소방호수」를 달아 6m높이(지상에선 10m)로 만든 것으로 6층 이하의 건물화재를 진화하는데는 제격이다. 우선 운전사가「엔진」만 걸면 30초안에 상하 좌우 1백80도, 수경으로는 3백60도의 회전이 가능하도록 고안되어있다. 이사다리를 만들기 위해 두 달 동안 서울시내 고물상을 돌아다니며 부속품을 사들였던 것.
그는 자동무인방수사다리를 손수 걸레로 닦고 「호수」를 점검한다.
이일이 끝나면 그는 해안 쪽에 산책을 나선다. 벌써 20여년째 계속해온 일과이다. 아침산책은 평균 3㎞. 도중의 속초시 영낭호반에 자리잡은 활터에서 1시간 가량 시위를 당긴다. 그의 유일의 취미라곤 활쏘기랄까. 8시쯤 집에 돌아와 아침을 들고는 다시 소방서에 나간다.
누가 시켜서가 아니다. 속초시는 재난이 많은 어항. 불뿐만 아니라 해상에 바람기만 있어도 수해비상, 눈송이만 떨어져도 설해비상이다. 이씨는 재난 많은 어항에 항상 신경을 「레이다」처럼 곤두세운다. 한 달에 20여일은 아예 소방서에서 지낸다.
66년이래 속초시 의용 소방대가 한해로 물 푸기 비상을 건 것만도 91회. 홍수와 해일에 1백6회의 등원기록을 세웠다.
68년10월24일 큰 해일이 폭우와 함께 동해지방을 휩쓸었을 때는 3일동안 전대원이 동원, 어선보호에 밤낮을 보내기도 했다.
이 때문에 그의 소방차 점검지시는 지상명령. 4대의 소방차엔 상근대원 9명을 두고 하루에 꼭 4, 5번씩 닦도록 엄명이다. 상근대원은 24시간동안 교대 철야근무. 그밖에 딴 대원에게는 이틀이 멀다하고 비상을 건다. 대원들 사이에 이씨의 별명은 「호랑이대장」에다, 「통곰」 .
「통곰」처럼 물·불을 두려워하지 않는데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씨가 소방수로 첫발을 내디딘 것은 1942년. 고향인 함북 철강공업학교를 졸업한 뒤 무산소방대에 소방수로 들어갔을 때부터. 그때 나이 24세 때였다. 1·4후퇴 때 월남, 속초에 머무르게 되면서 조그마한 철물점을 경영했으나 소방에 대한 관심은 늘 버리지 않았다.
지난6l년11월25일 속초 의용 소방대는 만장일치로 이씨를 대장으로 추대했다. 그때만 해도 속초 의용 소방대는 청사도 없이 셋방살이를 하고 있었다.
소방차로는 고철덩이나 다를 바 없는 낡은 소방차 2대가 고작. 화재현장으로 털털거리며 기어가다 「엔진」이 꺼지면 그 자리에 주저앉기가 일쑤였다.
이씨는 취임하자마자 사재를 털고 주민들의 성금 25만원을 모아 청사신축작업에 나섰다. 2년 동안의 고생 끝에 70평 크기의 새 청사를 지었다.
청사가 마련되자 다음에는 경보「사이렌」을, 그리고 화재빈발지역인 중앙시장 안에 50t들이 저수「탱크」 2개를 마련했다. 요즘 그가 연구하고있는 또 하나의 소방기구는 불이 났을 때 좁은 골목길을 드나들 수 있는 특수소방「지프」-. 철물점에서 수입되는 월 평균 8만여원중 한 달에 평균 3, 4만원의 사재를 소방기구의 개발사업에 쓰고 있다. 의용 소방대 총무 김정택씨(47)에 의하면 그가 투입한 사재만도 의용 소방대장 취임이래 4백여 만원은 내놓았을 것이라는 얘기. 그의 부인 김?성씨(49)는 『소방생활을 보람으로 여기는 그이의 집념을 막을 길이 없다』고 했다. 가족은 노부모와 함께 슬하에 해병대위로 근무하는 종길씨(32·고대졸)를 비롯한 6남매. 『속초시를 내 몸 보살피듯』이란 슬로건을 내세운 이씨는 요즘엔 1백20명의 의용 소방대원 한 사람 앞에 1.1평방㎞, 주민 1천1백84평, 건물 2백19동, 어선 21척 맡기의 다짐을 받고 소방사업에 전념하고 있다. <속초=장창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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