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바리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이불 밖으로 손목만 내밀어도 밖의 추위가 손에 잡힐 듯이 선하게 느껴지는 이른 새벽이다. 창을 통해 히뜩히뜩 휘날리는 진눈깨비가 보인다. 이런 날은 10분만 5분만 30초만 하고 누워 있다가 으레 아침을 굶고 나가기가 일쑤이다.
『하루쯤 쉬려무나.』 보기 딱해 하시는 엄마의 목소리를 들으니 더욱 목이 움츠러든다. 정말 꾀병이라도 앓아서 하루 좀 쉬고 싶은 날이다. 그러나 일당 6백원과 무결근자 봉급에 가산되는 「보너스」와 야간수당 얼마 식대 얼마… 누워있는 머릿속에는 번개처럼 주판알이 왔다갔다했다.
체납된 두달치 월사금 때문에 눈물자국이 얼어붙은 채 잠이든 성아, 방한장화를 사내라고 떼를 쓰던 막내 「폘레」하루출근의 그 돈이면 벼르기만 하다 해를 넘기고만 종이창 대신 유리를 씌운 새 창틀을 해 달 수도 있다.
『엄마 내 도시락.』
그사이 진눈깨비는 더욱 히득거리는 모양이다. 하얗게 눈이 쌓인 고갯길을 내려와 Y자 길목에 섰다. 추운데 그냥 갈까? 그러나 버릇이 된 발걸음은 어느 새에 담배 가게 옆을 들고 있었다.
외등이 켜진 학교 앞 작은 점포에 『세놓습니다』 멋들어지게 쓴 팻말이 내 것처럼 풍경소리를 내며 매달려 있다.
(팻말아 내 적금 찾을 때까지만 제발 그냥 붙어 있어다오.) (거기 야근할 사람. 저 말입니까. 야근수당 타먹을 사람거기 말고 또 누가 있어?)
학용품 가게를 차리면 공장장님께 제일 먼저 보여드려야지. 영하의 추운 날씨에도 동전 한 닢을 아끼려고 입석 「버스」를 기다리고 서있어야 하지만 내일이 있기에 고달프지 않은 오늘을 사는「악바리」의 꿈은 마냥 부푸는 무지개 빛 공중누각이 되어 머릿속에 훈훈한 입김으로 쌓여 올려지고 있다. 【백유성(부산시 동구 초량동1064 10동6방)】

<손거울 투고를 기다립니다>
여성여러분의 생활주변에서 일어나는 각종 이야기들을 글로 옮겨 「중앙일보사 문화부」로 보내 주십시오. 길이는 2백자 원고지 6∼7매 정도면 됩니다. 원고가 실린 분에게는 중앙일보사에서 발간되는 여성교양잡지「여성중앙」을 6개월 동안 댁으로 우송해 드립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