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선진화법 수명 다해” vs “불편하다고 공약 버리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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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누리당 최경환 원내대표(왼쪽)가 12일 황찬현 감사원장 후보자 국회 인사청문회장에서 민주당 소속인 박병석 국회 부의장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최 원내대표는 이날 원내대책회의에서 “국회를 정지시키는 데 악용하는 선진화법의 운명에 대해 국민에게 길을 물을 수밖에 없게 됐다”고 말했다. [김경빈 기자]

국회선진화법은 위헌인가 아닌가. 이 논제가 정국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새누리당이 선진화법에 대한 헌법소원 카드를 추진하면서다. 헌법소원은 위헌 법률에 의해 기본권을 침해받은 이가 직접 헌법재판소에 구제를 청구하는 일을 말한다.

 새누리당 최경환 원내대표는 12일 원내대책회의에서 “선진화법은 수명을 다했다”고 말했다. 그는 “대화와 타협을 하는 합리적 야당을 전제로 마련된 선진화법은 막무가내식 야당이 있는 우리나라에는 맞지 않다는 게 판명됐다”며 “민주당이 시도 때도 없이 국회를 정지시키는 데 악용하는 선진화법의 운명에 대해 국민에게 길을 물을 수밖에 없게 됐다”고 밝혔다. “이런 법을 선진화법이라고 부르는 것 자체가 코미디 같은 상황” “강남의 귤을 강북에 심으면 탱자가 된다는 고사를 입증하는 상황”이라는 말도 했다.

 새누리당은 즉각 율사 출신 의원들로 구성된 ‘국회법 정상화 TF’를 가동했다. TF팀장인 주호영 의원은 브리핑에서 “야당이 선진화법을 무기로 의사 일정을 전면 중단하고 국회를 파행으로 몰고 갈 가능성을 보인다”며 “위헌심판에 관한 구체적 법리 검토를 하자는 데 의견을 모았다”고 밝혔다. 주 의원은 “한두 번 회의를 더하면 헌법소원 등에 대한 결론을 낼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새누리당이 위헌 소지가 있다고 보는 부분은 의원 5분의 3 이상의 찬성이 없으면 법안을 통과시킬 수 없도록 만든 조항이다. TF 간사를 맡은 김진태 의원은 “미국은 상임위에서 30일 동안 결론이 나지 않으면 과반수 동의로 본회의에 넘긴다”며 “다수결 원칙이 있는데도 야당의 결재 없이 법안 통과가 안 되는 것이 헌법 원리에 맞느냐”고 반문했다.

 그러나 헌법소원 카드를 실제로 꺼내들지는 조금 더 지켜봐야 한다는 분석도 있다. 자신들이 본회의 통과를 주도한 법률을 위헌으로 몰아세우는 건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국회선진화법은 지난해 5월 2일 재적 의원 192명에 찬성 127명, 반대 48명, 기권 17명으로 통과됐다. 여야 합의의 결과다. 반대한 의원들은 주로 이명박계 의원들과 통합진보당 의원들이었다.

 당내 교통정리도 문제다. 지난해 선진화법 통과를 주도했던 황우여 대표도 전날 최고위원회의에서 “민주당은 국회선진화법을 누릴 자격이 없다”며 국회 공전의 책임을 물었으나 법률 개정에 대해선 명확한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당내 소장파 의원들과 함께 역시 법률 통과에 앞장섰던 남경필 의원도 평소 선진화법에 손을 대려는 시도에 비판적 시각을 보여왔다.

 무엇보다 선진화법은 4·11 총선 당시 새누리당의 선거공약이었다. 지난해 5월 본회의 이전 박근혜(당시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 대통령도 “총선 전에 여야가 합의했고 국민에게 약속드린 것으로 꼭 처리돼야 한다”고 강조했었다.

 그럼에도 새누리당이 헌법소원 카드를 만지작하는 건 야당이 반대하면 되는 일이 하나도 없는 국회 현실 때문이다.

 김진태 의원은 “새누리당이 총선 공약을 뒤집는다는 말에는 동의할 수 없다”며 “시행해보다 치명적인 결함이나 문제가 생기면 고치는 게 당연하지 않느냐”고 주장했다.

 민주당은 새누리당의 움직임을 강력히 비판했다. 김관영 수석대변인은 “국가기관의 대선 개입에 이어서 삼권분립이라는 민주주의의 기본틀과 가치마저 부정하는 발언들”이라며 “총선 때는 공약했다가 거추장스러우니 버리겠다는 발상”이라고 논평했다. 배재정 대변인도 “시행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여야가 합의한 걸 단지 불편하다고 해서 위헌소송 운운하는 것 자체가 황당하다”고 반박했다.

 새누리당 소장파와 함께 법안 통과를 이끌었던 원혜영 의원은 “민주당이 선진화법을 악용해서 여러 법안 처리에 장애를 줄 것이라는 일방적이고 근거 없는 예측으로 여야가 합의해서 만든 법을 위헌이라고 하니 어이없고 안타깝다”고 말했다.

강태화·이윤석 기자
사진=김경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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