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터로 이집트 사적 정리-조각된 『네페르티티』여왕의 지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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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컴퓨터」의 도움을 얻어 고대「이집트」의 사원들을 재생하는 작업에 종사해온 고고학자들은 「나일」강 유역의 가장 아름답던 「네페르티티」여왕이 부군인 「파라오」(고대「이집트」왕의 칭호)보다 훨씬 강력했던 것으로 믿게 되었다.
『학자들이 생각한 것보다 여왕의 지위가 훨씬 더 중요했다는 사실에는 이제 의문의 여지가 없게되었다』고 이 연구에 종사해온 「펜실베이니아」대학 고고학「팀」의 한 「멤버」인 「레이·W·스미드」박사는 말했다.
수많은 자료들을 「컴퓨터」에 넣어 정리시킨 결과는 그동안 아무도 몰랐던 6년간(기원전l367년∼1361년)이 눈으로 보듯 선명하게 부각되어 나왔다고 학자들은 전했다.
미국정부 보조금 60만「달러」(약2억2천3백만 원)를 얻어 1965년에 시작한 이 연구는 이제종반에 접어들었는데 「스미드」박사는 『「이집트」에 일신교와 그 의식이 마련된 것은 바로 이 잃어 버렸던 6년 사이며 인간역사상 이처럼 짧은 시일에 그처럼 많은 구조물이 세워진 예도 없었다』고 경탄했다.
사원의 화석 3만5천 개를 면밀히 분석해본 결과는 「네페르티티」여왕이 적어도 종교적으로는 부군인 「이크나톤」왕보다 훨씬 상위에 있었음을 밝혀주었다고 「스미드」박사는 전했다.
문헌들은 세계최초의 대 문화혁명을 일으킨 사람으로 「이크나톤」왕을 꼽아왔다. 재위 17년 동안 예술·문학·행정기구·사회관습 등에 극적인 변화를 가져온 그는 또한 「파라오」로 호칭된 첫 왕이기도 했다.
사원의 벽화들을 「컴퓨터」의 도움을 얻어 재생하는 작업은 엄청난 수사활동을 필요로 했다. 세계전역의 박물관 골동품 점. 상점들을 뒤져 「1×2」「피트」의 화석들을 찾아내 정밀 촬영해야했기 때문이다. 「스미드」박사에 따르면 화석 3만5천 개는 「아르나크」사원구조물의 약15%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화석사진들을 정밀 분석하여 얻어진 하나 하나의 자료는「컴퓨터」에 먹여 비슷한 화석군과의 연관성을 얻어 내야했다.
『우리는 이제 1천이상의 화면을 해독할 수 있게 되었는데 이처럼 화려하고 다채로운 벽화와 경이적 규모의 건축물은 일찍이 없었다』고 「스미드」박사는 감탄해 마지않았다.
『그동안 규명된 바로는「이크나톤」왕이 지은 사원은 하나가 아니라 셋이었다는 사실이다. 그는 그밖에도 많은 공공건물들을 지었다. 세 사원 중 하나만이 왕자신의 사원이었고 둘은 「네페르티티」여왕의 사원이었다는 사실도 여왕의 지위가 얼마나 중요했었던가를 말해준다.
여왕을 내세운 흔적은 그밖에도 많은데 여성이 이처럼 중요시된 일은 「이집트」전 역사를 통해 일찍이 없었다』고 「스미드」박사는 말했다. 【AP동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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