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든 탑 한순간에 … 아키노 한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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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니그노 아키노 필리핀 대통령(오른쪽)이 10일 태풍이 강타한 중부 록사스시에서 이재민들에게 구호품을 나눠주고 있다. [록사스 로이터=뉴스1]

베니그노 아키노 필리핀 대통령이 취임 3년5개월 만에 최대의 고비를 맞았다. 태풍 하이옌 초기 피해 집계가 시작되면서 9년 전 22만 명의 목숨을 앗아간 인도양 쓰나미와 맞먹는 규모가 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아키노 대통령으로선 두 달 전 이슬람 반군이 점거한 필리핀 남부 도시로 직접 날아가 도시를 탈환하고, 4주 전 세부에서 발생한 규모 7.2 지진을 수습한 후 또다시 찾아온 시련이다.

 아키노 대통령이 최대 피해 지역인 타클로반에서 정부의 늑장 대응에 분노한 생존자들의 항의에 밀려 쫓겨나다시피 대책회의장을 빠져나왔다고 영국 텔레그래프가 11일 전했다. 이번 태풍 피해에 대한 수습과 향후 대책 마련이 아키노 정치 인생에서 최대 시험대가 될 전망이다.

 코라손 아키노 전 대통령의 아들인 그는 취임 이후 강도 높은 부패와의 전쟁을 앞세워 대내외 신망을 높여 왔다. 필리핀은 신흥국들의 경기 침체에도 불구하고 4분기 연속 7%대 경제성장률을 유지해 왔다. 이에 힘입어 최근 무디스 등 3대 신용평가회사들로부터 ‘투자 적격’ 등급을 받기도 했다. 경제 실적이 좋았던 덕에 지난 5월 국회의원 선거에선 여당이 압승을 거둘 수 있었다.

 이번 태풍 피해는 필리핀 역사상 최대일 것으로 전망된다. 전체 인구의 9%에 달하는 950만 명이 피해를 보았고 주택 6만 채가 소실됐다. 태풍이 강타한 도시들은 도로와 공항 등 인프라의 70~80%가 파괴돼 복구까지 상당한 시일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블룸버그통신은 필리핀이 입을 경제적 손실이 최대 140억 달러(약 15조원)며 이 중 약 20억 달러만이 보험사를 통해 회수 가능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전영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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