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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버스가 떠나야 희망이 온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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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이철호
논설위원

쌍용자동차와 한진중공업이 되살아나고 있다. 옥쇄파업·크레인농성·희망버스·천막단식에서 놀라운 반전이다. 두 회사는 지난봄부터 흑자로 돌아섰다. 쌍용차는 뉴코란도c와 투리스모가 대박이 났다. 가벼운 모노코크 차체로 바꿔 입으면서 연비와 승차감부터 몰라보게 달라졌다. 캠핑 바람으로 순풍을 탔다. 투리스모는 버스전용차선을 달리는 게 숨겨진 비밀이다. 틈새시장 공략이 제대로 먹힌 셈이다. 쌍용차는 “퇴직자 복직 시점은 24만 대 생산”이라고 했다. 현재 흐름이라면 올해 19만 대 생산은 거뜬해 보인다. 내년에는 비밀병기인 X100이 예고돼 있다.

 한진중공업도 숨쉬기가 한결 편해졌다. 5년간 영도조선소의 해외 수주는 ‘0’이었다. 유럽선사들의 돈줄은 꽉 막히고, 중국 업체의 덤핑 경쟁이 목줄을 조였다. 이런 빙하기가 완연한 해빙 무드로 돌아섰다. 지난달 영도조선소는 유럽에서 4척의 대형선박을 한꺼번에 수주했다. 규모는 작지만 고부가가치인 드릴십의 수주계약도 진행 중이다. 텅 빈 도크가 채워지면서 유급휴직자들도 현장 복귀를 서둘고 있다. 대단히 반가운 소식들이다.

 이쯤에서 짚고 넘어갈 대목이 있다. 5년 전 쌍용차는 7154명이 8만1400대를 생산했다. 올해는 단 4840명이 그 두 배를 훨씬 넘게 만들고 있다. 생산성이 4배 가까이 뛴 것이다. 뒤집어 말하면 그만큼 과잉고용이 심각했다는 뜻이다. 과연 2009년의 살벌한 구조조정이 고의 부도를 노린 미친 짓이었을까. 오히려 경영 판단에 따른 긴박한 대수술 쪽에 무게가 실린다.

 하지만 두 회사의 장기적 생존은 여전히 의문이다. 한진중공업이 살려면 사업방향을 기술집약 쪽으로 다각화하는 수밖에 없다. 문제는 영도조선소의 좁은 공간이다. 고부가가치의 초대형 컨테이너선과 LNG선, 그리고 해양 플랜트를 짓기에는 역부족이다. 유일한 해법은 바다를 매립하는 길이다. 여기에는 환경단체들의 격렬한 반대가 기다리고 있다.

 쌍용차도 마찬가지다. 벌써부터 인도의 마힌드라가 기술을 빼갈지 모른다는 ‘민족감정’이 고개를 들고 있다. 하지만 마힌드라가 왜 비싼 인건비에다 강성노조가 버티는 쌍용차를 인수했겠는가? 기술 말고는 없다. 어차피 쌍용차의 주인은 마힌드라다. 쌍용차의 이익과 기술을 과도하게 빼가면 국세청의 이전가격 조사로 다스리면 그뿐이다. 무엇보다 쌍용차에 대한 시각부터 바꿀 필요가 있다. 쌍용차는 외국기업의 국내공장이나 다름없다. 망해가던 쌍용차를 일으켜 세우고, 수천 명의 고용을 유지한 마힌드라에 고마워할 일이다.

 돌아보면 쌍용차와 한진중공업 사태 때 우리 사회는 감정에 휘둘린 느낌이다. 수술대에 오른 두 회사의 노조는 현대차·현대중공업과 비교하며 억울함을 감추지 않았다. 진짜 경쟁상대는 중국·필리핀의 저임 근로자들인데 말이다. 정치권과 외부 세력들은 “당신도 언제 잘릴지 모른다”며 대중들의 막연한 불안감을 자극했다. 희망 없는 희망퇴직, 명예롭지 않은 명예퇴직의 공포감에 사로잡힌 사람들은 앞다투어 희망버스에 몸을 실었다.

 쌍용차와 한진중공업이 우리 사회에 남긴 트라우마는 깊고 넓다. 지금까지 분명하게 드러난 사실은 두 회사의 부활이 가열찬 투쟁이나 희망버스의 산물이 아니라는 점이다. 유일한 비결이라면 시장의 입맛에 맞는 제품을 착한 가격에 내놓은 것이다. 몸집을 줄이고 생산성을 높인 것도 공통점이다. 결과적으로 희망버스는 너무 일찍 출발한 느낌이다. 그들이 다녀간 뒤에야 희망의 싹이 돋아 올랐다. 정말 두 회사의 근로자들을 위한 희망버스라면 지금 떠나야 한다. 다시 힘차게 일어서는 그들을 응원하려면 말이다. 쓸데없는 민족감정을 가라앉히고, 환경단체들을 설득해 조선소를 넓혀주는 것도 그들을 돕는 길이다. 어쩌면 희망버스라는 이름부터 함부로 붙일 일이 아니다. 판도라의 상자에는 고통과 질병, 수많은 불행이 빠져 나온 뒤에야 희망이 남았다. 희망은 그렇게 마지막에야 온다.

이철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