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산 부대인쇄물>
구 화폐단위가 「원」이었고 또 새 돈에도 한글로 「원」이라고 찍힌 이상 한자로도 당연히 「원」을 썼어야 할 것이었다. 도안을 우리 나라에서 해갔다면 도안한 사람이 원과 원의 구별을 못했을 리가 없다.
이 문제에 관련해서 이조말기의 화폐단위 「환」을 연상할 수 있다. 고노들이 흔히 「환」이라고 말하는 것을 많이 들었었다. 그러나 이조 때의 「환」이 「환」인지 「원」인지는 분명치 않다.
어쨌든, 이 새 돈으로 화폐 계획을 했고 국민들은 대통령긴급명령에 따라 「원」과 「원」이 동시에 표기된 화폐단위를 「환」으로 고쳐 부르게 됐었다.
돌이켜보면 미군이 인쇄해온 그 돈은 한은 금고에 보관해 둔 채 6·25피난 때 부산으로 가져가지 못했다. 은행직원들은 미군이 맡겨놓은 인쇄물이라고만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 행원들은 그것을 「아이스캔디·박스」라고 부르기도 했다.
이 돈 상자는 가로 60㎝, 세로와 높이 각 30㎝의 나무궤짝이었고 돈을 담은 무게는 30㎏정도였다. 상자마다 자동폐쇄장치가 돼있어 화폐교환 후에는 은행서류함으로 쓰기도 했고 행원들이 집에 가져가서 가구대용으로도 사용했다.
9·28수복 때 와보니 돈 상자는 하나도 다치지 않고 그대로 보관돼 있었다. 부산으로 가져간 것은 1·4후퇴 때며 부산서 보관할 장소를 못 구해 한참 애를 먹었다. 그때 마침 조선방직창고가 비어있고 보관시설도 괜찮아서 거기에다 맡기고 경찰에 엄중한 경비를 요청했다.
이렇게 해서 새 지폐는 확보돼 있었지만 통화 개혁에 따른 부대 인쇄물을 찍어내는 것이 큰 문제였다. 우선 국내에서 인쇄를 할 경우 잠깐 사이에 될 것도 아닌데 비밀을 어떻게 유지하느냐의 문제가 있었다.
이상덕 조사부장은 적당한 인쇄소를 물색하기 위해 부산시내를 샅샅이 뒤진 후 귀포까지도 가 보았으나 마땅한 곳이 없다고 했다.
그때의 인쇄소시설은 요즘 같은 고속윤전기가 없어 공정이 상당히 느린 것이었다.
이 조사부장은 이 같은 인쇄공정, 필요한 인쇄물의 양, 실시일자 등을 고려해서 정확히 며칠 전부터 인쇄를 시작해야 「카운트·다운」이 딱 맞아떨어질 것인가를 정확히 계산하고있었다.
장소가 괜찮은 곳은 더러 있었으나 대부분 시설이 미흡했다. 그래서 비교적 빠른 속도로 인쇄할 수 있는 대상으로 신문사도 한때 고려해보았는데 운전실을 완전봉쇄하기가 불가능하다는 이유 때문에 채택되지 않았다.
나는 백 재무장관과 상의한 결과 미국이나 일본에서 인쇄를 해올 수밖에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래서 이대통령 재가를 얻기 위해 백 장관과 함께 경무대로 들어갔다.
이 대통령은 백 장관의 해외인쇄얘기를 들은 후 『그럴 필요까지 있느냐?』고 반문하면서 임철호 비서관(전 국회부의장)을 불러 『속사판 있지? 그것 좀 가져와』했다. 임 비서관이 갖고 들어온 것은 바로 등사판이었다. 이 대통령은 등사판을 속사판이라고 불렀었다.
『안전한 장소가 없으면 이걸 갖고 내방에서 만들라. 아무도 못 들어오게 할 테니…』라는 이 대통령 말에 백 장관과 나는 어이가 없어 『다시 연구해 보겠습니다』는 말을 남기고 물러 나왔다. 백 장관과 다시 숙의한 결과 동래에 있는 조폐공사공장을 쓰기로 결정했다. 통화개혁발표를 나흘 앞둔 2월11일 백 장관, 나, 이 조사부장 세 사람은 조폐공사에 가서 나정호 사장을 만났다.
백 장관은 대뜸 왼쪽 가슴에 차고 있던 육혈포를 꺼내 나 사장 책상 위에 얹어 놓은 다음 『지금부터 내가 하는 얘기는 국가백년대계를 위한 것이다. 이 시간부터 이상덕 한은 조사부장이 시키는 대로 긴급통화조치용 인쇄물작업을 시작하라. 이 사실이 누설되면 우리 모두의 모가지는 하루아침에 날아간다』고 엄숙히 지시했다. 곧 조폐공사간부들을 사장실로 불러들여 이 조사부장이 상세한 인쇄계획을 「브리핑」하기 시작했다.
물론 우리 셋이 사장실로 들어온 순간부터 조폐공사에는 일체의 출입이 차단됐다. 육군헌병 50여명이 조폐공사를 완전히 둘러싸 버렸기 때문이다. 대외적으로는 『조폐공사에 큰 부정사건이 있어 조사중』이라고 위장했다. 이 시간부터 조폐공사는 4일간의 비상 철야작업을 시작했다. 거기서 인쇄한 것은 대통령담화문, 공고문, 화폐교환신고 용지 등 일반대중에게 배포할 많은 양의 인쇄물이었다.
그밖에 정부 관계 요로와 국회의원들에게 돌릴 법령과 해설, 실제 교환업무에 종사할 금융기관직원들을 위한 교환실시요령 등도 모두 여기서 인쇄됐다. <계속> [제자는 필자]계속>난산>
(313)제22회 부산통화개혁(6)
중앙일보 지면보기 서비스는
로그인 후 이용 가능합니다.
로그인 후 이용 가능합니다.
최근 1개월 내
지면만 열람하실 수 있습니다.
지면만 열람하실 수 있습니다.
중앙일보 지면보기 서비스는
로그인 후 이용 가능합니다.
로그인 후 이용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면 최신호의 전체 내용을 보실 수 있습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더중앙플러스 회원이 되시면 창간호부터 전체 지면보기와 지면 다운로드가 가능합니다.
더중앙플러스 회원이 되시겠습니까?
더중앙플러스 회원이 되시겠습니까?
앱에서만 제공되는 편의 기능
- · 로그인하면 AD Free! 뉴스를 광고없이 더 깔끔하게
- · 속보는 물론 구독한 최신 콘텐트까지! 알림을 더 빠르게
- · 나에게 딱 맞는 앱 경험! 맞춤 환경으로 더 편리하게
개성과 품격 모두 잡은 2024년 하이패션 트렌드
Posted by 더 하이엔드
집앞까지 찾아오는 특별한 공병 수거 방법
Posted by 아모레퍼시픽
“차례상에 햄버거 올려도 됩니다”
ILab Original
로맨틱한 연말을 위한 최고의 선물
Posted by 더 하이엔드
데이터로 만들어낼 수 있는 혁신들
Posted by 더존비즈온
희귀질환 아이들에게 꿈이 생겼습니다
ILab Original
ADVERTISEMENT
ADVERTISEMENT
메모
0/500
메모를 삭제 하시겠습니까?
기사를 다 읽으셨나요?
추억의 뽑기 이벤트에도 참여해보세요. 이벤트 참여하기
추억의 뽑기 이벤트에도 참여해보세요. 이벤트 참여하기
기사를 다 읽으셨나요?
추억의 뽑기 이벤트에도 참여해보세요. 이벤트 참여하기
추억의 뽑기 이벤트에도 참여해보세요. 이벤트 참여하기
더중앙플러스 구독하고
추억의 뽑기 이벤트에도 참여해보세요. 혜택가로 구독하기
추억의 뽑기 이벤트에도 참여해보세요. 혜택가로 구독하기
중앙일보 회원만열람 가능한 기사입니다.
중앙일보 회원이 되어주세요!회원에게만 제공되는 편의 기능이 궁금하신가요?
중앙일보 회원이 되시면 다양한 편의 기능과 함께 중앙일보만의 콘텐트를 즐길수 있어요!
- 취향저격한 구독 상품을 한눈에 모아보고 알림받는 내구독
- 북마크한 콘텐트와 내활동을 아카이빙하는 보관함
- 기억하고 싶은 문구를 스크랩하고 기록하는 하이라이트/메모
- 중앙일보 회원에게만 제공되는 스페셜 콘텐트
알림 레터 서비스를 이용하려면 뉴스레터 수신 동의가 필요합니다. 동의 하시겠어요?
뉴스레터 수신 동의
중앙일보는 뉴스레터, 기타 구독 서비스 제공 목적으로 개인 정보를 수집·이용 합니다. ‘구독 서비스’ 신청자는 원칙적으로 개인정보 수집 · 이용에 대해 거부할 권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단, 동의를 거부 하였을 경우 이메일을 수신할 수 없습니다. 구독 신청을 통해 발송된 메일의 수신 거부 기능을 통해 개인정보 수집 · 이용을 거부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