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의 수도' 뉴욕, 20년 만에 민주당 시장 선택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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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시장 선거에서 승리한 민주당 후보 빌 더블라지오가 5일(현지시간) 뉴욕 브루클린에서 가족들의 어깨를 감싸며 함께 기쁨을 나누고 있다. 더블라지오의 승리로 민주당은 20년 만에 뉴욕시장을 배출하게 됐다. 더블라지오 오른쪽이 부인 셔레인, 왼쪽은 아들 단테와 딸 키아라. [뉴욕 AP=뉴시스]

돈의 수도, 미국 뉴욕에서 정권이 교체됐다. 지난 20년간 보수파가 장악했던 세계 경제 심장의 정치권력은 진보파로 넘어갔다.

 5일(현지시간) 실시된 뉴욕시장 선거에서 빌 더블라지오(52) 민주당 후보가 공화당의 조셉 로타(57) 후보를 압도적 표 차(73% 대 24%)로 누르고 제109대 시장으로 당선됐다.

 이로써 민주당은 1993년 선거에서 공화당 소속 루돌프 줄리아니에게 패하면서 공화당에 내줬던 뉴욕을 20년 만에 되찾게 됐다.

 더블라지오의 승리 요인은 다층적이다. 표면적으로는 다문화가정을 이룬 그의 개인사가 다양한 인종으로 구성된 뉴욕 유권자의 심금을 울린 측면이 있다. 독일계 아버지와 이탈리아계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맨해튼 토박이인 더블라지오는 동성애 경험이 있는 7살 연상의 흑인 아내와 94년 결혼해 1남1녀를 두고 있다. 이들의 결혼식 동영상은 최근 뉴욕타임스 웹사이트에 게재돼 화제가 되기도 했다.

 뉴욕 경찰의 불심검문 정책에 대한 반대를 분명히 한 것도 소수 인종 유권자들의 지지로 이어졌다. 보수파들은 뉴욕의 치안 강화를 위해 불심검문 필요성을 강조해 왔지만, 유독 유색인종 청년들에게 불심검문이 집중되면서 인종 간 갈등으로 확산되는 상황이었다.

 실제 선거에서 더블라지오는 흑인 등 유색인종의 폭넓은 지지를 받았다. 여론조사기관 에디슨리서치가 실시한 출구조사에서는 흑인 유권자의 96%, 히스패닉계 유권자의 82%가 더블라지오를 찍었다고 대답했다.

 그러나 이번 선거의 향방을 가른 것은 역시 경제였다. 2000년대 9·11 테러와 글로벌 금융위기라는 비극이 뉴욕을 강타했다. 그러나 친기업주의를 앞세운 줄리아니와 블룸버그라는 두 명의 걸출한 보수파 시장의 지휘 아래 뉴욕 경제의 외관은 번성했다. 고층건물은 늘었고, 맨해튼의 집값은 최고가를 경신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중산층은 무너졌고, 양극화는 극심해졌다.

 더블라지오는 이 틈을 파고들었다. 그는 선거운동 기간 내내 뉴욕의 현 상황을 ‘두 도시 이야기’로 묘사했다. “부자들이 더 부유해지는 와중에 중산층 뉴요커들은 어려움을 겪고 뉴욕시민의 반 이상이 빈곤선 근처에서 맴돌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가 해결책으로 내세운 것은 ‘부자 증세’다. 소득 기준으로 뉴욕 시민 가운데 상위 1%에 해당하는 연 소득 50만 달러(약 5억3000만원) 이상에 대한 소득세율을 현행 3.876%에서 4.41%로 올리겠다는 것이었다.

 법인세 유예, 상업용 건물 건축에 대한 재산세 경감 혜택도 없애겠다고 했다. 이렇게 확보한 세금으로 서민용 주거시설 20만 채를 짓고, 맞벌이 부부 자녀들을 돌볼 유아원 시설과 방과후 프로그램을 늘려 서민들을 지원한다는 구상이었다. 재계와 보수파들이 그를 ‘포퓰리스트’라고 지적하는 이유다.

  이번 선거는 단순히 뉴욕에서 민주당이 부활한 것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AFP는 “뉴욕 선거는 당장 내년으로 다가온 의회선거를 앞두고 미국 유권자들의 표심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를 점쳐볼 바로미터였다”고 평가했다.

이상렬·강남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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