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급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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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아빠의 직장은 무척 바쁜 곳이다. 남들이 쉬는 경축일이나 공휴일엔 더욱 바빠지는 직업이고, 보면, 귀가시간은 언제나 통금 5분 전이다.
기진맥진한 몸으로 타박타박 돌아오는 외로운 퇴근길…. 아마도 아빠의 가슴속은 될 수 있는 대로 빨리 집에 가서 편히 쉬고 싶다는 마음 뿐으로 가득 차 있으리라. 오늘은 월급날이다. 언제나 그렇듯이 이 달도 조금이라도 저축할 수 있는 생활이 되기를 소원하며, 나는 벌써 며칠 전서부터 한달 생활계획에 목록을 빽빽히 「메모」해놓고 목이 빠지게 이날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대문을 열고 들어서는 아빠의 표정이 왠지 시무룩한걸 어두운 곳에서도 나는 금방 알아차릴 수가 있었다. 가슴이 철렁했다. 아니나 다를까 ,월급봉투를 보는 순간 나의 한달 계획은 산산조각이 나고 만 것이다.
3만원도 채 못되는 쥐꼬리만한 월급에 이것저것 다 떼고 심심치 않게 무슨 교육이니, 무슨 강습이니 하더니 급기야는 교육수강료 개인부담액이라고 월급에서 3분의1을 제했다. 우리에겐 정말 하늘이 노란 거액이다. 그만큼 더 붙어와도 시원치 않을 이 월동준비 계절에 무참히도 댕강 잘라낸 것이다. 하지만 나는 짜증이나 바가지를 긁을 수가 차마 없다. 쩔렁쩔렁 동전까지 봉투에 고스란히 담아온 아빠! 교육이니 시험이니 자격이니 갈수록 몸과 마음이 고달파지기만 하는 「샐러리맨」의 생활. 눈을 감고 누워있는 아빠 모습이 너무도 측은하고 애처로와져서 격려와 위로라도 해주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었다. 눈시울이 뜨거워짐을 어쩔 수 없을 때 『엄마, 왜 그래?』하고 달려드는 네살박이 훈이 품에 나는 용케도 얼굴을 감추었다. [장인희(서울영등포구 흑석1동257의40호 16통1반 김종권씨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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