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으로 문화읽기] 롤러코스터의 생리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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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22면

겨우내 움츠렸던 생물들이 기지개를 켜는 계절, 봄이 왔다. 겨울 내내 한산하던 놀이동산도 동물들이 기지개를 켜듯 봄이 되면 생기가 돈다. 바이킹도 더 높이 올라가는 것 같고, 비명소리도 더 크게 들리는 듯 싶다. 바야흐로 소풍의 계절이 돌아온 것이다.

놀이동산의 최고 인기스타인 롤러코스터 앞에도 이제 긴 줄이 늘어설 것이다. 햇살이 더 따스해지고 기온이 올라갈수록 줄은 점점 더 길어질 것이다.

3백60도 회전하고 고공낙하를 하는 동안 잠시나마 더위를 잊고 짜릿한 쾌감을 만끽하기 위해 몰려든 사람들로 롤러코스터는 몸살을 앓게 될테니 말이다.

롤러코스터 위에서 비명을 지르는 사람들을 보면 행복해보이지만, 생리학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롤러코스터에서 지르는 비명은 신체에 위협을 느낄 때 나오는 '진짜' 비명이다.

롤러코스터가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는 순간 사람들은 즐거운 긴장감에 젖는다. 뇌하수체가 부신선에 신호를 보내 에피네프린과 노르에피네프린을 분비시키면 심장 박동도 빨라지고 관상동맥도 넓어져 혈액 흐름이 증가된다. 앞으로 벌어질, 정신을 쏙 빼놓을 일들에 대한 마음의 준비랄까.

최고점까지 천천히 올라갔다가 아래로 향해 수직 강하하듯 떨어지면, 1천분의 1초의 짧은 순간에 뇌는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이 '신체에 위협이 되는 사건'임을 몸에 알리고 중추신경계에 신호를 보낸다. 호흡은 가빠지고 신체는 스프링처럼 움츠린다.

롤러코스터가 3백60도 회전을 세 번쯤 하면, 넓어진 혈관을 통해 피부 아래로 분출된 혈액은 사람들을 더욱 발그레하게 만든다. 빠른 속도로 선회를 하면 모근 근처에 있던 기립근들이 미세한 혹처럼 튀어나오는데, 이른바 닭살이 돋는 것이다.

생리적으로 위협을 느낀 신체는 고통을 경감시키는 신경전달물질인 엔돌핀을 마구 분비한다. 20여 종류의 엔돌핀 중에서 특히 β-엔돌핀이 가장 많이 분비되면서 우리 몸은 고통을 넘어 일종의 쾌락을 맛보게 된다.

장시간 운동을 할 때에도 비슷한 경험을 하게 되기 때문에 사람들은 이러한 쾌감을 '러너 하이'(runner high)라고 부른다.

또, 뇌의 한 구석은 세로토닌을 분비하는데 우울증 환자의 치료제로도 쓰이는 신경전달물질답게 세로토닌은 레일 위에 올라탄 사람들에게 더없는 행복감을 느끼게 만들어준다.

공중묘기를 끝내고 갑자기 속도가 줄어들면서 롤러코스터가 수평레일을 달릴 때면 15개의 안면 근육이 수축하고 협골주근육이 윗입술을 들어올리면서 얼굴 전체에 웃음이 퍼진다. 커다란 웃음은 눈물샘을 자극하여 얼굴을 다시 붉게 만들기도 한다.

승강장에 내릴 때쯤 사람들 눈에 하나같이 눈물이 고여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제 다시 심장 박동은 정상속도로 돌아오고 호흡도 깊어지면서 긴장이 풀어진다.

사람들의 몸이 다시 평소 상태로 돌아온 것이다. 반복된 일상에서 탈출, 안전하면서도 가장 위협적인 공포감을 느끼기 위해 오늘도 사람들은 발을 구르면서 롤러코스터 앞에 줄을 선다.

우리 몸은 또 한바탕 신경전달물질과 호르몬들로 인해 전쟁을 치르겠지. 허파와 심장은 우리보다 더 긴장하고 있을지도 모른다.올 봄에도 어김없이 놀이동산에선 스릴을 즐기러 기꺼이 올라탄 롤러코스터 위에서 행복한 비명소리가 마구 들려올 것이다.

정재승 고려대 물리학과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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