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원질서의 회복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정부의 「10·15특명조치」로 말미암아 무거운 침묵 속에 잠겨있던 대학가에 간신히 정상화 기운이 들고있어, 국민에게 큰 안도감을 주고 있다. 박 대통령은 지난 28일 문교·국방 두 장관을 불러 「선의의 학생」들에 대한 징집연기 등 구제조치를 강구토록 지시한바 있거니와, 30일에는 다시 『학원질서 회복에 즈음한 담화』를 발표, 대학정상화를 위한 첫 구체적 움직임의 「이니셔티브」를 대통령 자신이 잡았다.
그는 이날 발표된 담화를 통해『영원한 국가발전의 기본방향을 제시할 창조적 지성의 전당』으로서의 대학과 대학생 및 대학사회의 사명에 대해 자신의 소신을 피력하고, 『앞으로는 학원 스스로가 모든 문제를 자율적으로 처리해 나갈 것을 학교 당국에 당부한다』고 했다.
이 시점에서 우리는 저간의 「10·15조치」등으로 학원에 대해 호된 매질을 가했던 정부당국자가 스스로 『학원이 이러한 진통을 겪지 않을 수 없게 한데 대해 정부로서도 응분의 책임을 느낀다』고 술회하면서 어버이의 심정으로 대학과 대학생들에게는 물론, 모든 기성시대의 뼈아픈 반성을 호소하고 있는데 대해 공감을 표시한다. 본 난이 누차 지적한바와 같이 대학생들은 장차 이 나라의 장래를 짊어질 민족의 청열한 생명력의 원천으로서, 설사 그들의 언행의 일부가 눈에 거슬릴 만큼 과격하고 탈선된 것이 있다 할지라도, 이를 다스리는 정부당국자의 태도는 어디까지나 어버이로서의 위신과 아량을 겸비한 것이어야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의 담화문 발표를 계기로 하여 민 문교는 즉일로 휴업령을 전면해제 했으며, 그 뒤를 이어 그동안 자진휴교 중이던 여러 대학들도 부산하게 수업재개를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므로 이 시점에서 국민 모두의 소원은, 모처럼 소생하기 시작한 이 같은 대학정상화를 위한 기원이 한 걸음 더 나아가 진정한 대학발전의 계기가 되어 불행했던 이번 사태를 도리어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아 주었으면 하는 절실한 바람이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여기서 대학생 제군과 대학 당국자는 물론, 모든 정부 당국자들이 함께 모든 기왕지사를 일단 무로 돌리고, 전혀 새로운 심정에서 참다운 학원정상화의 길이 무엇인가를 모색하는 공동노력의 대열에서야 할 것으로 생각한다. 그리고 이러한「아포리아」(난국)에 부딪쳤을 때는 일체의 기성관념이나 상투적인 접근태도를 일단 괄호 속에 몰아넣고 전혀 새로운 방향에서의 해결 방법을 모색하여야 하는 것이다.
명분이나 경위야 어찌됐건, 우리 사회에서 지난 수년간 악순환을 되풀이해온 젊은 대학생들의 외향적 욕구불만의 표시와 또 이에 대한 정부당국의 물리적 제압의 반복이라는 도식을 단절하는 유일한 방법은 이처럼 종래와는 1백80도 다른 각도에서 대학·대학생·대학사회 내지 정부권력의 관계에 대한 합의를 모색하고, 그러한 관계를 육친지정과 같은 사랑과 설득으로써 서로 존중하지 않으면 안되겠다는 것이다.
먼저 우리는 대학생제군들이『촌음을 아껴가면서 전진의 대열에 서야할 우리 대학과 대학생 자신들의 사명』과, 또 한국적인 특수 여건 하에서의 현명한 현실참여의 방안이 무엇인가를 재삼 심사숙고해 주기 바란다.
학생들이 제시하려는 많은「이슈」들은 상당한 타당성을 가진 것이지만 그것이 적에 이용될 구실을 줄 우려가 있다거나, 또는 바로 그러한 우려를 이유로 한 학원의 폐문사태 등 불행을 자초하는 방식으로 표현된다면 이는 결코 현명한 일이 아닐뿐더러 우리 국민 중 누구도 그것을 바라지는 않을 것이다.
대학의 정상화를 위해서 다음으로 시급한 것은 이번 사태로 크게 금이 가게된 사제지간의 신의와 실추된 대학당국자 및 교권의 권위를 행정적·제도적으로 바로 잡아줄 수 있도록 하는 고려라할 것이다. 「10·15 특명조치」의 집행과정에서 대학의 총·학장 및 교수들은 본의였건 아니었건 타율적인 지시에 따른 학생제적과 학칙개정을 단행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바로 이 곤경 때문에 이들은 제자들 앞에 설 면목을 잃게된 사실을 또한 외면할 수 없다.
우리는 대학당국자 및 학생들이 이 딱한 사정을 서로 따뜻한 사제지정으로 극복하기를 바라는 바이지만, 정부당국으로서도 이 문제가 내포하고 있는 심각한 교육적 문제성을 깨닫고 그 해소를 위한 적극적인 배려가 없어서는 안될 것이다.
우리는 대학과 대학인, 그리고 모든 지성인들의 협력으로 『고민 어린 조국애와 이에 뒷받침된 생산적 지성의 좌표』를 호소한 박 대통령의 충정이 참다운 대학정상화를 가져오는데 성실하게 반영되기를 희구해 마지않는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