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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폐기물 처리, 핀란드의 성공 비결을 배우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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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조현욱
객원 과학전문기자
코메디닷컴 편집주간

독일 북부의 ‘아세(Asse) II’ 암염 폐광은 환경 시한폭탄이다. 1960, 70년대 핵폐기물 수십만 드럼을 저장했던 곳이다. 정부는 이곳을 폐쇄하고 출입 통로를 소금으로 채워 넣었다. 하지만 2008년 언론은 방사능에 오염된 소금물이 지난 20년간 유출돼왔다고 폭로했다. 애초에 암염 광산이 폐기물 저장에 최적이라는 가설 자체가 잘못됐던 탓이다. 여론은 아직도 논쟁으로 들끓고 있다. 갱도 전체를 다시 메워버릴 것인가 아니면 폐기물을 모두 꺼내서 다른 곳으로 옮길 것인가. 그동안 정부는 오염수를 퍼내서 기준치를 넘는 것은 다른 곳의 저장소로 보내는 임시조치를 하고 있다.

 사용후 핵연료를 안전하게 버리는 방법은 무엇일까. 지난 4일 과학전문지 ‘뉴사이언티스트’는 이 문제를 심층 보도했다. 이에 따르면 ‘아세II’는 이와 관련한 글로벌 논쟁의 축소판이자 타산지석이다. 대부분의 전문가는 암반에 깊은 터널을 뚫고 그 속에 저장소를 만드는 것이 최선이라고 말한다. 지진이나 전쟁, 허리케인에 견딜 수 있도록 말이다. 다만 여기에 성공한 나라는 거의 없다.

예컨대 미국이 네바다 주에 건설 중이던 유카산 저장소를 보자. 2010년 오바마 정부는 이미 110억 달러가 투입된 이 프로젝트의 포기를 결정했다. 환경단체뿐 아니라 160㎞ 떨어진 곳의 라스베이거스 주민까지 격렬하게 반대한 탓이다.

 거의 유일한 성공사례로 꼽히는 것은 핀란드다. 섬의 화강암 암반에 420m 깊이의 나선형 터널을 뚫는 공사가 10년째 진행 중이다. 사용후 핵연료를 영구 저장하는 세계 최초의 시설, 온칼로(Onkalo)다. 내년에 예정대로 정부의 허가를 받으면 2015년 최종 단계의 건설이 시작될 예정이다. 여기에는 2022년부터 100년간 9000t이 들어갈 예정이다.

  핀란드의 성공 비밀은 무엇인가? 시민의 목소리를 반영하는 것을 핵심 전략으로 삼은 데 있다. 폐기물 저장에 대한 최종 승인권, 즉 거부권까지 주었다. 핀란드 ‘방사선 및 핵 안전국’ 책임자는 “이 문제를 다루는 데 필요한 정치적 의지와 공약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와 비슷한 지하 저장시설의 허가를 검토 중인 스웨덴 역시 핀란드와 유사한 접근법을 따르고 있다.

 한국은 어떤가? 최근 ‘사용후 핵연료 처리 공론화위원회’가 발족했다. 하지만 시민단체가 비토권까지 가지지는 못했다. 이것은 우리나라 정치의 수준 탓일까, 시민단체의 수준 탓일까.

조현욱 객원 과학전문기자·코메디닷컴 편집주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