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집 아줌마의 영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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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이 마을로 이사를 온 것은 몇 년 되지 않은 지난 4월이었다. 「내 집 갖기」 10개년 계획을 세우고 조그마한 적금을 부어 가는 나의 꿈을 앞당겨 아빠는 약간의 무리를 하면서까지 집을 장만하셨던 것이다. 처음 이 집을 보러왔을 때 마당 군데군데 짚을 엮어 씌워 놓은 장미나무가 마음을 끌었다. 『이게 봄이 오면 저 나무에서 빨갛고 하얀 꽃들이 피겠지….』 부푼 꿈을 안고 이사를 온 날 풀한 포기 없이 황량한 뜰에 움푹움푹한 자국만이 울고 싶을 이 만큼 깊은 허무를 느끼게 했다. 장미보다 더 좋은 사철나무로만 뜰을 가득 채워 주겠다는 아빠의 위로로 마음을 풀었지만, 집을 마련하기 위해 빚까지 짊어진 우리로선 상상으로만 펴 볼 꿈이었다.
그후, 봄비가 촉촉이 내리는 날이면 우리는 마당가에 나가 앉아 이름 모를 풀조차도 소중히 옮겨 심으며 화단을 토닥거렸다. 염치없이 옆집 마당을 엿보며 화초를 얻기도 하고, 함쑥 솟아난 채송화와 다른 화초를 바꾸기도 했다. 어느새 마당은 무성한 잎으로 덮이고 꽃망울은 저마다 신비로운 빛과 향기를 퍼뜨려 벌과 나비를 불러 들였다.
며칠 전, 옆방에 살던 이가 아사를 하게되어 복덕방엘 갔다. 힘겹게 집의 위치를 설명하는데 할아버지께서 『아, 그 꽃집 말이 시군요. 진작 꽃집이라고 그러시죠?』하며 웃으신다.
어느새 우리 집이 꽃집이 되었나….
아직은 철모르는 애들이고 마냥 소녀이고 싶은 마음이지만「꽃집 아줌마」란 부름은 결코 싫지 않아 봉지봉지 꽃씨를 담는다.
윤보리(서울 성북구 미아7동 852의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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