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박 풍조부터 먼저 몰아내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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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정부는 오는 10월1일부터 내무·법무·보사·문공 등 4개 부처가 공동으로, 모든 퇴폐 풍조를 추방하기 위한 대대적인 정화 운동을 벌이기로 했다 한다. 정부가 앞으로 단속할 퇴폐 풍조의 대상으로는 ①외설적인 서적·간행물·영화 공연·음반 ②「히피」머리와 전위 예술을 빙자한 퇴폐적인 「해프닝」예술 ③무신고 공연 행위 ④각종 접객업소와 유기장 안에서의 풍기 문란 행위 ⑤선전 광고물의 저속 과장 묘사 ⑥외설적인 사진·영화 및 도서의 복제 판매 ⑦주택가에서의 윤락 행위와 공원지에서의 풍기 문란 행위 ⑧각종 습관성 의약품의 암매 및 사용 ⑨도박 행위 ⑩기타 사회 윤리를 저해하는 행위들이라고 한다.
오늘날 우리 사회 안에 범람하고 있는 저속하고 외설적인 출판·공연물과 각종 유흥업소에서 앞장서고 있는 「핑크·무드」조장이 사회 질서의 근간을 동요시키고, 청소년들에게도 심대한 악 영향을 끼치고 있음은 가리울 수 없는 사실이다. 따라서 정부가 또다시 새삼스럽게 이의 단속을 위한 합동 단속반을 구성하고 퇴폐한 사회 기풍의 진작 운동을 벌이게 됐다는 것은 그럴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들 퇴폐 풍조의 단속에 있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러한 퇴폐 풍조 일소 운동의 대상 선정에 있어 선후가 있어야 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정부의 이번 퇴폐 기풍 일소 운동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일반 국민 사이에서 가장 만여도가 높은 퇴폐 행위와 그러한 퇴폐 풍조를 가져오게 한 근원을 색출하여, 이에 대하여서도 집중적인 단속을 실시하는 것이 긴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러한 만연도가 가장 높은 것 중에서도 첫손에 꼽아야할 것은 오늘날 남녀노소·도시·농촌 할 것 없이 거의 풍조화하다시피한 도박 행위가 아닌가 생각된다.
물론, 정부의 이번 단속 대상에는 도박도 들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이에서 「카지노」영업이 제외된 것부터가 의아스럽다는 것이다. 「카지노」는 엄연한 도박 행위임에도 불구하고 외화를 벌어들인다는 명목으로 공인된 것이기는 하지만, 실지로는 외국인보다도 내국인들이 더 많이 출입하여 특권층을 위한 일종의 공인된 도박장 구실을 하고 있는 것이다.
현재 「카지노」는 서울의 「워커힐」을 비롯하여 인천 「오림포스」·해운대 극동 관광 호텔·서귀포 관광 호텔 등에 설치된 것을 합해 모두 4개소에 달하는데, 여기에 출입한 내 외국인 69년 중 7만2천명이지만, 여기서 환금된 외화 총액은 1년에 기껏 1백만달러 밖에 되지 않는다. 이에 비하여 내국인이 뿌린 돈은 몇 천만원이 될지 모르는 형편이다.
따라서 정부가 「카지노」와 같은 공인 도박장의 개설을 허용하면서 소규모의 심심풀이 도박을 단속한다고 하면 이는 자가당착도 이만 저만이 아니라고 하겠다. 공인 도박장에서 몇 백만원대의 거금이 탕진되어 가산을 잃은 사람도 부지기수요, 공금을 횡령한 사람들도 많은 실정인데 송사리 도박 사범만 적발하여 엄벌한다고 하는 것은 국가의 윤리성과도 모순되는 것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법은 형평을 가장 중요한 본질로 하고 있는 터에 거물급 도박꾼은 공인하고 송사리 도박꾼만 단속하는 것은 본말을 전도한 것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또 정부가 이번 퇴폐 기풍 일소를 위해 아르바이트 행위나 광란적 음악, 또는 선정적 춤을 단속 대상에 넣고 집단 풍기 사범에 대해서도 제재를 가하기로 한 것은 좋은 일이나, 이를 위해서는 먼저 다만 몇 집이라도 권력의 비호 하에 세금을 포탈하고 즉석 윤락 행위를 하게 하는 비밀 요정부터 일소해야 할 것이다. 비밀 요정에는 고급 공무원이나 특권층이 행차하기 때문에 단속하지 않고 젊은이들의 싸구려 오락 행위만을 단속하는 것은 부조리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퇴폐 풍조를 일소하는데 있어 가장 효과적이면서 또한 가장 근본적인 대책이 있다면, 그것은 이러한 물리적 단속과 병행하여 청소년들에게 건전한 오락과 스포츠의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청소년들에게 건전한 작풍을 진작시키기 위하여서는 그들에게 희망을 주어야 할 것이고 부질없는 위기 의식을 불어넣어서는 안될 것이다. 위기 의식이 팽배하는 경우, 퇴폐 풍조가 만연하는 것은 사회 생태학 상 하나의 필연적인 현상임을 역사는 말해주고 있다. 젊은이들에게 내일에의 희망이 있고, 또 사회 질서의 기본적인 「룰」이 지켜지고 있는 사회에서는 퇴폐 풍조란 싹틀 수조차 없는 것이다. 정부는 먼저 성인 사회의 기강을 바로 잡고, 성인들이 솔선수범 함으로써 청소년들에게 건전한 사회 풍조를 이룩하도록 해주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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