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 교육과 한글 전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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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학술원은 21일 김 총리의 자문에 대한 답신을 보냈는데 이에는 한자 교육 부활, 학교 문법 통일안에 따른 협의 기구 구성, 국립 국어 연구소 설치 등 어문 교육에 관한 중대한 의견이 제시돼 있다. 학술원은 특히 국민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최소한 1천3백자의 한자 교육을 시행할 것을 전면 찬성했는데 이는 정부의 한글 전용 정책에 대한 비판이라 볼 수 있겠다.
정부는 그 동안 국민학교에서는 물론, 중등학교 교과 과정에서까지 모든 한자 교육을 전폐하고 교과서에서도 한글만을 전용해 왔다. 그러나 이러한 편벽한 한자 교육 폐지 때문에 국민학교나 중·고교를 졸업하고도 신문 하나 제대로 못 읽고, 하물며 전문 서적에는 거의 까막눈이 된 학생들을 대량 양성했었다. 그래서 그 동안 한국어문 교육 연구회, 국어 국문학회, 한국 국어 연구회 등 어문 단체에서는 기회 있을 때마다 한자 교육의 부활을 건의하였고, 지난봄 이래에는 이에 31개 학술 단체가 가담한 끈질긴 운동을 벌여왔던 것이다. 이들의 주장은 대체로 『문교부 제정 상용 한자를 각급 학교에서 가르치되, 종전대로 국민학교에서, 6백자 정도, 중학교에서 1천자 정도, 고등학교에서 1천3백자 정도를 가르치도록』하자는 것으로 요약되는바 본 난도 누차 이에 전폭적인 지지를 표명해왔음을 상기할 것이다.
우리는 각급 학교에서 한자 교육을 실시해야할 절대적인 필요성을 누누이 주장해 왔지만, 그렇다고 해서 한글 전용론 자체를 반드시 배격하지는 않는다.
다시 말해서 국내적으로는 모든 공용 문서의 한글화와 한자 사용의 빈도를 줄여 우리의 언어 생활을 점차 전적으로 한글화하는 것 자체를 반대할 의사는 없다는 것이다. 그 동안 정부가 강행해 온 한글 전용 정책 때문에 우리 나라에는 본의든 본의가 아니든 간에 한자에 관한 한 이미 다수의 문맹자가 있을 것이기에, 장차는 당국의 강제가 없어도 한글 전용화의 시대가 올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때에도 엄격히 구별해야 할 것은 한자의 교육과 한글 전용은 전혀 별개의 문제로 유리해서 생각해야 한다는 것을 몇 번이라도 강조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의 전통 문화가 모두 한자에 의하여 이루어진 것이요, 이웃 중국과 일본은 물론, 동남아 각국이 여전히 한자를 사용하여 한자로써 의사 소통을 하고 있는 곳이 많기에 한자의 국내 사용은 제한하더라도 한자의 교육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아세아 문화권은 한자 문화권이라고 할 수 있는데 한자를 교육하지 않는 경우 우리 나라만이 아세아 문화권에서 소외될 가능성이 많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자 교육 문제에 관련하여 가장 중요시해야 할 국면은 그것 없이는 우리의 자라나는 자녀들에게 문화의 단절을 강요하는 것이 된다는 점과 또, 고급 사고 능력을 길러주지 못한다는 점을 절대로 외면해서는 안 되겠다는 것이다. 우리말 가운데 60% 이상 75%까지를 정하고 있는 한자어의 의미 내용은 한자에 대한 교육이 없이는 거의 그 이해가 불가능함을 상기할 때, 성급한 한글 전용론자들의 주장이 한자 교육의 폐지로까지 비약한 것은 하나의 민족적 과오를 범한 것이라 아니할 수 없다. 뿐만 아니라 일부 국민학교에서는 영자 교육까지 실시하고 있는 터에 한자 교육을 모든 학교 교육 과정에서 완전히 폐지함으로써 오늘날 각급 학교의 졸업생들은 취직이네 사회 활동에도 적지 않은 지장을 받고 있음을 또한 외면할 수 없을 것이다.
김 총리는 한자 교육 문제의 중요성에 비추어 그 정책의 결정을 독단적으로 결정하지 않고 학술원에 자문을 의뢰한 것으로 알고 있다. 따라서 이제 이러한 자문에 대한 학술원의 결정은 한자 교육의 부활을 결정적으로 촉구하는 계기를 만들어준 것이라 우리는 믿고 싶다.
학술원은 『한글 전용 방향의 교육이 국민의 지성을 저하시키고 학술 발전을 저해하며 문화의 전통을 말살하고, 따라서 국제적 고립을 초래했다』고 지적하고 있는 바, 국내외에 대해서 우리 나라 과학자를 대표하는 국가 기관 인이 학술원의 건의는 그 무게에 있어 천만 구의 함축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지적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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