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가쟁명:유주열] 가슴을 찌르는 “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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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중국과 일본은 “섬”(댜오위다오 또는 센카쿠)의 영유권 문제로 전쟁도 불사하는 일촉즉발의 위기에 놓여 있다. 악화일로에 있는 심각한 중일(中日) 갈등은 35년 전 양국의 평화우호조약의 비준서가 교환된 지난 10월 23일을 아무런 기념행사도 없이 넘겼다.

1978년 8월 베이징에서 서명된 동 조약의 비준서는 중국 정상으로서는 처음 일본을 방문한 덩샤오핑(鄧小平) 국가 부주석에 의해 교환되었다. 당시 후쿠다 다케오(福田赳夫) 일본 총리는 문화대혁명을 마무리 하고 방일한 덩샤오핑을 극진히 영접하였다. 덩은 치바(千葉)의 신일철 제철소를 참관하고 신간센(新幹線)을 타고 교토(京都)등 유적지도 둘러보았다.

일본은 닉슨의 중국 방문에 따른 반소(反蘇) 미중(美中) 해빙무드에 자극받아 1972년 8월에 다나카(田中角榮)수상이 중국을 극적으로 방문 저우언라이(周恩來)총리를 만나 공동성명을 발표하고 양국은 국교를 회복한다. 이후 두 나라는 평화우호관계의 국제법적 토대를 마련하기 위해 평화우호조약을 체결한 것이다.

당시 중국은 아시아에서의 패권을 주장하는 소련을 견제 하는 반소(反蘇)연대가 필요했고 경제적으로는 일본의 자본과 기술 지원이 아쉬운 때였다. 일본으로서는 냉전 시대의 극복과 중국의 잠재적 시장을 높이 평가하고 있었다.

이제 소련이 해체되면서 냉전시대는 끝났고 중국은 30년의 개혁 개방 결과 경제규모는 일본을 능가하게 되었다. 일본으로서는 중국의 부상을 위협으로 느끼기 시작하였다. 이런 배경 하에 두 나라가 양보할 수 없는 “섬”이 표면에 떠오르면서 양국 관계에 태풍이라도 닥아 올 듯 거센 풍랑이 일고 있다.

아시아의 G2인 일본과 중국이 “섬” 문제 이외에도 구동존이(求同存異)의 정신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가 산적해 있다. 사람들은 양국을 복교시킨 다나카의 뚝심과 저우언라이의 실용주의를 찾게 되고 양국을 평화우호관계로 묶은 덩샤오핑의 지혜와 후쿠다의 배려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이 “섬”이 중일 양국의 가슴을 찔러 치명적인 상처를 낼지, 평화로운 강태공의 낚시터가 될지 중요한 기로에 와 있기 때문이다.
“모든 분쟁은 평화적 수단으로 해결 한다”라는 중일평화우호조약을 다시 새겨 보게 된다.

유주열 전 베이징 총영사=yuzuyoul@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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