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공 교육개편의 방향|이규호<연세대교수·교육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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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문교부에서 국민학교와 중 고등학교의 교과 과정을 개편하는 작업을 하면서 종래의 반공 도의 교육을 체계화하고 이를 더욱 강화하려고 했었다.
그래서 국민학교 교과 과정에서는 이미 반공과 도의를 내용으로 하는 윤리가 하나의 독립된 교과로 설정되었고 대학에서도 국민 윤리가 교양 학부에서 강의되고 있다.
윤리교육을 하나의 독립된 교과로 설정하는데 대한 방법론적인 이론은 있을 수 있지만 우리는 문교 당국이 윤리교육에 더 많이 관심을 갖고 이를 강화하려는데 대해서 찬동했던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여기에서 윤리 교육이라는 것은 이미 말한바와 같이 반공 교육과 도의 교육을 내용으로 한다. 오늘날과 같이 우리의 생활 방식이 급격하게 변천하고 따라서 종래의 도덕 규범이 뿌리로부터 뒤흔들리는 시대에 있어서는 도의 교육은 이론적인 실제적인 어려움에 부딪치지 아니 할 수 없다. 하나의 이론적인 세계관이나 하나의 틀에 박힌 가치관을 절대화하여 전제할 수는 없는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도의 교육의 어려움은 더 말할 것도 없다.
우리 나라의 윤리 교육은 지금까지는 도의 교육보다도 반공 교육에 더 치중해 왔다. 물론 도의 교육과 정치 교육은 원래 서로 분리할 수 없이 밀접하게 연결된 것이지만 그 성격과 내용은 같은 것은 아니다. 도의 교육은 착하고 보편적인 행동 규범을 지향하지만 정치 교육은 늘 특정한 사회 체제와 그 질서를 전제로 한다. 물론 일정한 현실적인 사회 체제에 구속되지 않는 도의교육도 없고 도의와 분리된 정치 교육도 바람직하지 못하다.
그러나 이들은 그 성격과 내용과 목표에 있어서 동일한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 나라의 윤리 교육이 도의 교육보다 정치 교육, 곧 반공 교육에 치중한 것은 그 동안 현실적인 요청에 의해서 불가피했던 것 같다. 그런데 국무총리가 국회에서 발언한 바와 같이 우리의 종래의 반공 교육은 깊은 반성과 새로운 개혁을 하지 아니할 수 없게 되었다. 도의 교육과 마찬가지로 정치 교육도 그 자체가 매우 어려운 문제점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도의 교육뿐만 아니라 전체적인 인간 교육과 밀접하게 연결되어야 하겠으며 또한 보편적인 이론만을 따를 수는 없고 우리의 정치적인 현실에 완전히 뿌리 박아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 주변의 정치적인 정세는 급격하게 변천하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여러 가지 의미에서 종래의 반공 교육을 반성하고 정치 교육의 새로운 방법과 방향을 찾아야 하겠다.
교육학적으로는 우선 크게 두 가지 점에서 반성해야 하겠다. 첫째로는 무엇인가를 지지하는 교육으로의 전환을 신중히 생각해 보아야 하겠다. 종래 우리의 긴박한 사정이 요청했던 반공 교육은 이제 시간의 여유가 생기고 정세가 완화하면 민주 교육으로 그 방법과 내용을 서서히, 그리고 신중히 검토하면서 발전시켜 나가야 하겠다.
자유로운 생활 방식과 민주적인 사고에 익숙한 애국적인 인격은 독재 체제에 대한 가장 힘있는 방패가 된다. 그래서 우리의 정치 교육도 부정적인 방법에서 긍정적인 방법으로 전환해야 하겠다는 것이다.
둘째로는 종래의 정의에 호소하는 교육에서 전인 교육에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 종래의 반공 교육은 주로 공산주의에 대한 반감을 유발하고 강화하는 방법을 따랐다.
이성에만 호소하는 주지주의 적인 도의 교육이나 정치 교육은 효과적이 못 된다. 왜냐하면 인간은 그의 행동을 이성적인 동기보다는 더 강하게 정의적인 동기에 의해서 결정하는 경향을 가졌기 때문이다. 인간의 세계관과 그의 삶의 방향 등은 이성보다도 그 밑바닥에 깔려있는 정의적인 심층에서 결정된다. 그런데 종래의 반공 교육은 그러한 심층적인 정의보다는 표면적인 감정의 자극에만 치중한 느낌이 있다.
그리고 인간의 심층적인 정의는 이성적인 이해와 분리될 수 없다. 종래의 반공 교육이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측면을 거의 소홀히 한 것은 부정 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런데 이러한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측면은 더 자유롭고 철저한 학문적인 연구를 전제로 함으로써만 고려될 수 있는 것이다. 우리 나라에서도 앞으로 일반 국민의 경제적인 생활 기반과 사회적인 질서가 향상되고 안정되면 이러한 측면도 발전적으로 다루어질 수 있을 것이라고 믿어진다.
그리고 자라나는 세대에 대한 정치 교육은 우리 민족의 먼 장래와 통일의 앞날을 늘 염두에 두어야 한다는 것은 다시 주장할 필요가 없다. 어떠한 역사의 변화에도 민감하게 대처하면서, 어떠한 시련도 주체적으로 극복할 수 있는 개방적이고 적극적인 정치 의식을 길러주기 위해서는 종래의 감정에만 호소하는, 그리고「이데올로기」에만 집착된 교육은 우리의 현실이 허락하는 한 지양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정치 교육이나 도의 교육은 생활 교육이며 따라서 교육기관들만을 통해서 행하는 것이 아니고 사회 전체를 통해서 효과적으로 행하는 것이라는 것을 우리는 인식해야 하겠다. 사회전체의 분위기·언어 생활·매스컴·예술·오락 등이 모두 윤리 교육과 깊은 관계를 가졌다. 그러므로 우리 사회의 건전한 정신적인 풍토와 부정부패가 없는 복지 사회와 질서를 사랑하고 참여와 비판에 있어서 늘 이성적이고 건설적인 태도를 견지하는 분위기 등은 자라나는 국민을 위한 효과적인 민주 교육의 전제이다.
그러나 우리의 생존권이 광적으로 도발을 받으면 우리 자신도 아무리 다음 세대의 교육을 위해서라고 해도 냉정하고 이성적일 수만은 없다는 것을 첨언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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