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뜬 기대의 엄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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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한 적십자사회담개최를위해 양측의 대표들이 접촉을 할 날짜가 박두함에 따라 지금 우리 사회에는 남북관계 현상타파의 움직임이 싹트기 시작했다. 남북을 가로막고있는 분단의 장벽을 인도적인 면에서나마 뚫어보고자 대화를 시도하게 되었으니, 이것이 국민에게 착잡·미묘한 반응을 자아낸다는것은 불가피한 일이다.
일반적으로 국가의 대외정책 선회는 국민에게 큰 충격을 주는 것이지만, 우리의 경우처럼 4반세기에 걸쳐 남북사이에 적대적대립이 지속되고, 대화의 길이 완전히 끊겼던 관계가 별안간 변화할 것같은 움직임을 보이게되니, 그것이 국민심리에 미치는 영향도 유달리 심각하리라는것은 상상하기 어렵지않다.
적십자사회담개최의 실마리가 간신히 잡히게된 오늘 이시점에서 우리는 회담의 전도에 대해서 낙관도 비관도 하지않는다. 왜냐하면 공산주의자를 상대로하는 협상은 좀처럼 해서는 만족스러운 결실을 보기가 여간 어렵지 않다는것이 과거부터 잘알려진 경험상 교훈이기 때문이다.
북괴는 한국적십자사의 인도적제의를 외면할 수가 없어 만부득이 회담제의를 수락하였지만 그들이 도중에서 이 회의를 변질시켜, 남한사회를 교란하고 적화시키려는 수단으로 악용할 가능성은 다분히있다. 따라서 우리로서는 앞으로 어떤사태가발생하든지 우선은 가족찾기운동에 국한해서만 회담을 진전시켜 나가야하며, 회담의정치적탈선을 엄중경계하면서 상대방의 성의를 촉구해 나가야 할 것이요. 만약에 북괴가 이쪽의 선의를 악의로 보답코자 한다면 아무때나 회담을 박차고 나올 결의를 가다듬어야 할 것이다.
우리 국민가운데는 한반도를 싸도는 국제정치정세의 움직임이 뚜렷하게 해빙을향하고 있는 것같고, 인도적인 면에서 남북간의 초보적인 대화가 열릴실마리를 붙잡게된것을 보고, 너무환상적인 기대에 들떠 남북대립의 가혹한 현실을 평화통일의 꿈과 혼동 착각하고, 들뜬 마음으로 앞지른 주장을 내세우고 있는 자들이 없지않다.
특히 국회의원중에는 당장에라도「유엔」에서 남북대표가 만나야 한다느니, 혹은 북괴의 영화를 보게하자느니, 정치협상을 하자느니, 이북오도청을 폐지해야 한다느니 운운하면서 국민의 마음을 더한층 들뜨게하는 자도 나타났다.
국회의원의 국회에서의 발언이 면책특권을 갖고있는 탓으로 그들은 무슨 말을 해도 무방하다는 생각을 가질는지 모른다. 그러나 앞뒤를 깊이 생각지않고 그저 인기만 얻으면 그만이라는 생각에서 무책임하게 내세우는 발언이과연 국민심리에 어떤영향을 끼칠것이며, 또 북괴가 얼마나 이를 좋은 선전자료로 이용할것인가를 생각하면 우리는 깊은 우려릍 금 할 수가 없다.
또 이와같이 앞지른 발언은 책임있는 정부당국자에 의해서도 간간이 행해지고 있는데, 전혀 환상적인 사태를 가정해놓고하는『만일 …한다면』하는식의 질문에 아무 소득도 없이 미리 이쪽의 속셈을 드러내는 답변을 함부로 한다는 것도 도저히 이해할수없는 일이라 아니할 수 없다.
미·중공의 접근은 반드시 한반도정세의 호전을 의미치 않는다. 미·중공의 화해가 궁극적으로 한반도를 국제권력정치의 세력권적대립에서 벗어나게 하리라는 것은 예측할 수 있지만, 북괴가 계속 남진통일정책을 견지하는한, 사태는 조금도 개선되지않을것임을 잊어서는 안된다. 우리 국민은 적십자회담제의를 받아들인 북괴가 바로 그다음 다음날 무장공비를 침투시켰다가5명이나 사살당한 사건을 일으켰음은 직시할 필요가 있다.
남북대립의 긴장을 풀기 위한 유일한 방법은 서서히 대화를 가지고 단계적인 해빙을 모색하는길 뿐이다.
우리는 가족찾기운동과 같은 입도적문제가 해결되어야만 문화교류를 간신히 시도할 수 있을것이며, 또 문화교류가 행해져야만 보다 높은 단계로서 경제교역을 바라볼 수 있고, 그것이 기정사실이 된 연후에라야만 최종단계로서 정치협상을 시도해 볼수 있다. 이처럼 남북이 긴장을 풀고 평화공존하는 길은 험난하기 짝이 없는 것이다. 적십자회담이 개최의 문턱에 이르렀다하여 만사가 다 일거에 다 순조로이 해결될줄알고 경거망동하다가는 부지부식간에 우리가북괴가 만들어놓은 함정에 빠져 돌이킬 수 없는 상황에 도달하게된다는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우리는 변화의 도전을 두려워해서는 안된다. 그러나 그 도전을 서뿔리, 그리고 너무 성급하게 받아들이려고 하다가는 대한민국 자체가 큰 화를 입을 가능성이 있음도 잊어서는 안된다. 국가의 외교자세를 바꾸기 위해서는 우리 사회내부의 정치적인 태세와 사상투쟁 태세부터 정비강화해야한다는 점을 지적하고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