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5 26주와 한국의 전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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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어제 우리는8·15해방 26주를 기념했다. 일본제국주의의 패배해체로 자유·해방을 맞이하게 되었던 우리 민족이 그날부터 4반세기가 넘는 오늘날까지 두 조각으로 나누어져 분열대립을 지속하고 있다는 것은 통탄을 금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금년 8·15는 미·중공간 화해·접근「무드」의 조정, 그리고 일·중공간 접근의 움직임 등으로 말미암아 한반도를 싸도는 국제정세에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나고 있고, 또 이 해빙 경향에 발을 맞추어 남북한관계가 지금까지의 철저한 적대적 대립에서 초보적인 돌파구를 설정하려는 환경 속에서 이날을 경축하게 되었으므로 우리는 종전과는 상당히 다른 감격를 느끼면서 이날을 보냈다.

<주변정세변화의 의미>
지금 한반도 주변에 벌어지고 있는 정세변화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 정세변화의 주요인이 미·중공간 화해접근시도에 있음은 두말할 필요도 없지만, 미·중공간의 화해접근은 반드시 국제정치상 연쇄반응을 일으켜 소련이나 일본 등 강대국의 대외적인 진로에 큰 영향을 줄 것이므로, 국제권력정치상 새 조류의 파동이나 향방을 정확히 예측하기는 곤란하다. 그렇지만 20여년을 두고, 적대관계를 지속했던 미·중공간의 상호접근이 당장의 화해를 의미치 않는다 하더라도 그것이 평화공존을 지향하고 있으며, 또 그 평화공존이 성립되면 「아시아」의 정세가 크게 완화될 수 있으리라는데 대해서는 현재 이 시점에 있어서도 의문의 여지가 없다.
핵「미사일」의 포화상태가 자아낸 대전억제 요인의 증대, 「내셔널리즘」의 요구에 바탕을 두는 국제권력정치의 다원화를 향한 재편성 등은 무력대결대신 평화협상을 중요한 수단으로 등장시켰다. 미국이 세계를 지배하던 시대 혹은 미·소 공동지배하의 세계질서의 시대는 간 것이요, 분명히 인류전체가 평화를 향해 대결을 지양하는 새 시대에 접어들었다.

<현상동결정책 속의 한국>
10년 가까이 지속해 온 미·소의 평화공존이 미국과 미국의 세력범위, 그리고 소련과 소련의 세력범위를 상호 존중하는 기반 위에서 유지·발전되어 왔음은 누구도 시인을 아끼지 못한다. 따라서 그것은 유달리 현상동결의 성격을 띠고 있는 것이지만, 이 현상동결로 말미암아 2차 대전 당시 미·소 양대국에 의해 분단 점령되었던 독일과 한국은 국제정치상 분단의 운명은 계속 감수하지 않으면 안됐다. 지금 싹트고 있는 미·중공간 해빙「무드」가 구체적인 평화공존태세로 실현된다면, 그것 역시 현상동결로 기울어질 것이다.
이와 같이 된다면 한반도에 있어서의 남북대립은 국제권력정치의 대립에서 해방되어 민족자결로 통일을 촉구하게 될 공산이 크다. 다만 이처럼 한반도를 싸도는 정세변화는 해빙을 지속하고 있음에로 불구하고 북괴는 여전히 평화통일의 탈을 쓰고 남침통일의 야망을 버리지 않고 있다. 따라서 이 한도 안에서 우리 역시 무장대립을 지속하면서 안전을 위한 자위책을 강구치 않으면 안 된다.
그렇지만 본질적으로 보아 평화애호국가인 한국이 해빙정세를 외면하면서 대 북괴 및 대 공산권 관계에 있어서 강경정책을 지속하여 국제적인 독립을 자초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외교활동의 폭을 넓혀 「이데올로기」나 사회체제 여하를 불문하고 우리와 평화공존하기를 원하는 국가라면 교역과 수교의 손을 내밀어야 한다. 적대하는 국가는 경계하고, 선린하기를 원하는 국가와 우호친선 한다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인 것이다. 이와 아울러 우리는 극도의 긴장이 누적돼있던 남북관계를 개선하여 평화통일의 기운을 성숙시켜 나아가야 한다.

<가족 찾기 운동의 전도>
8월12일 대한적십자사가 흩어진 가족 찾기를 위해 「남북적십자사회담」을 열자고 제안한데 대해 북괴측이 원칙적으로 수락한다는 의사를 표시하게 됨으로써 적십자사간의 회담이 조만간에 열리게 된 것은 남북간 대화의 실마리를 찾게됐다는 의미에서 휴전동결이래 남북관계사상 획기적인 시발점을 이루어 놓은 것이라 볼 수 있다.
남북간 적십자사회담은 거기서 다루어야 할 문제가 매우 까다로운데다가 북괴가 이 회담을 변질시켜 정치공세의 일환으로 이용할 가능성이 충분히 있으므로 많은 난관을 극복해야만 간신히 초보적인 합의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현재로는 낙관도 비관도 불허하지만, 대한적십자사측은 북괴의 정치적 악용을 엄격히 배제하면서 순수한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회담을 지속하도록 세심하고 끈질긴 인내 속에서의 노력을 지속해야할 것이다. 그리고 일부 국민가운데는 회담개최 합의가 곧 회담의 결실을 의미하는 줄 알고 일종의 환상적인 기대를 걸고 있는 자도 있지만, 공산주의자와의 회담이나 협상은 그 종류여하를 불문하고 대단히 까다롭기 때문에 합의에의 도달이 결코 용이치 않다는 점을 잘 인식하고 들뜬 마음을 억제하고 일절 경거망동을 삼가주기를 바란다.

<국민총화와 내정개혁>
박 대통령도 8·15기념사에서 지적했다시피 우리는 이 나라가 현재 직면하고있는 전환기 정세에 능동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는 먼저 국민적 총화를 이룩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필요하다. 그런데 현재 우리 사회에서 국민총화를 가로막고 있는 것은 빈부간의 대립, 지방간의 대립, 세대간의 대립이다. 이 삼대대립을 극복치 않으면 우리는 우리의 독립과 안전·번영을 위협하는 외부세력에 대해서 능동적으로 대결해 나아갈 수가 없는 것이다. 부정·부패의 일소, 국가사회의 기강확립, 사회정의의 구현 등을 목표로 내정면에 일대혁신을 일으키고, 대외정책 전환을 뒷받침해주는 국내정치태세를 정비·강화해야 할 소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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