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환기 경제 속의 물가동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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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한은 총재는 13일 8월 이후의 물가추이를 계속 주시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함으로써 물가문제가 심상치 않음을 시사했다.
6·28환율조치로 물가가 하반기에 크게 상승하지 않을 수 없으리라는 점은 누구나 예상했던 것이나 문제는 환율인상의 후유 파동을 어느 수준에서 다시 안정시킬 수 있을 것이냐 하는 점이라 할 것이다.
13%의 환율인상은 수입의존도가 30%수준이므로 대략 4%의 물가상승요인을 발생시킨다고 일단 가정할 수 있다. 그러나 현실은 그러하지 못하다는데 물가문제의 심각성이 내재돼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벌써 일부상품은 환율인상 후 60%까지 오르고 있으며 일반적으로 수입상품값도 환율과 동일률로 상승하거나 그에 앞지르고 있다.
그 위에 하반기에는 추곡수매자금의 방출, 공공요금의 인상, 추석경기 등 물가요인이 불가피하게 나타날 것이므로 자칫 잘못하다가는 환율인상의 효과를 미처 보기도 전에 다시 환율과 물가의 악순환과정을 파생시킬 염려가 없지 않게 되었다.
한편 물가는 상승해도 업계는 심각한 불황 속에 접어들고 있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경제상황은 어쩌면 한국경제가 전환기적인 국면에 접어들고 있음을 시사하는 것 일수도 있다. 즉 차관도입과정의 호황기를 탈출해서 바야흐로 원리금상환기의 불황기에 접어드는 것으로 해석할 여지가 충분하다는 것이다.
계속적인 무역수지적자에 더하여 흑자를 유지하던 무역외수지가 이제는 적자로 전환되어 외환보유고가 감퇴하는 과정에 접어들었다는 시사가 있음은 주목을 요하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물자공급능력은 상대적으로 감퇴할 경향성을 보이고 있는데 반해서 환율이 인상되어 물가요인은 상승 가중되게 형성되어간다는 평가가 성립되는 것이다. 이러한 물가요인을 상살하는 것이 다름아니라 환율인상에 따른 통화·금융면의 수축효과라 할 것이다.
무역수지적자가 10억「달러」 수준이므로, 「달러」당 50원의 환율상승은 대체로 연간 5백억원의 통화환수효과를 가져야할 것이다. 그 위에 차관원리금상환으로 환수되는 원화가 연간 9백억원 수준에 있는 것이므로 외환「사이드」에서 파생되는 구매력의 긴축효과는 엄청난 것이다.
문제를 이와 같이 본다면 앞으로 물가문제는 정책운영의 기본방향 여하에 따라서 크게 달라질 수 있는 여지를 내포하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즉 정부가 물가상승폭을 크게 억제할 생각이 있다면 차관원리금상환 및, 환율인상으로 생기는 통화수축효과를 살리기 위해 재정·금융 면에서 앞으로도 계속 종전과 같은 견실한 입장을 살리기만 하면 된다.
반대로 업계의 불황과 도산을 염려하여 재정·금융 면에서 다시 크게 풀어준다든지, 또는 경제성장률을 떨어뜨리지 않기 위해서 확장정책을 고수한다든지 하는 경우에는 물가와 환율 악순환은 불가피할 것이다.
어느 경우를 선택하는 것이 진실로 국민경제를 원하는 것인가를 당국은 깊이 통찰해서 물가문제를 다뤄야 할 것이다.
이제 한국의 경제가 명백히 전환기적인 특성을 보여주고 있는 이상, 경제운영의 기본방향을 재검토하고서 그에 따라 물가정책의 방향을 설정해야 할 것이지 단순한 물가정책이라는 부분정책으로 문제를 다루어서는 아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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