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담이 열린다면 그 절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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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8·12제의」는 분단 26년만에 남북접촉을 처음으로 타진, 시도하는 획기적인 제의다. 더우기 최두선 대한적십자총재가 12일 이 제의를 발표하면서 『이산가족을 위해 끝내 성취되도록 꾸준히 노력하겠다』고 강조한 것은 단순히 던져버리고 마는 정치적 효과보다 그 실현에 대한 강력한 의지와 함께 통일을 향한 장기포석의 첫 단계로 확대 해석될 수도 있다. 대한적십자사는 이 제의에서 「북괴」 대신 「북한」을, 「납북가족」 대신 「이산가족」이라는 말을 써서 적의있는 표현을 피했다. 이는 상대방이 꼭 받아들이도록 유도한 것이며, 그만큼 이 제의에는 정치적·외교적 계산이 적었던 것 같다. 이 계획의 추진에 가담한 관계자는 『북괴가 거부하면 다시 제의하고, 그래도 실패하면 다른 실현방안을 다시 찾겠다』고 했다.
이 제의에 대한 북괴의 반응, 수락할 경우의 회담진행, 그리고 상당한 시일이 걸려서라도 다행히 회담이 어떤 성과를 내는데 까지는 숱한 난관을 극복해야 할지 모른다. 무엇보다 이 인도적 제도를 북괴가 정치적으로 이용할 위험성이 회담의 앞길을 가로막는 가장 큰 장애물로 예측된다.
미·중공의 접근 등 「아사아」의 해빙「무드」와, 이와 관련한 국제정치의 역학관계는 이 제의에 뒤따를 양상에 적잖은 영향을 미칠 것이다. 특히 남북회담이 이루어지고 전개되는 과정은 앞으로의 미·중공관계와 그 역할에 많은 영향을 받게될 것이다. 몇 가지 가능성을 전체로 「8·12」제의 뒤에 올 양상을 가늠해본다.
남북적십자회담 제의에 대해 북괴가 당장 수락할 여지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 제의의 「이니셔티브」를 우리가 쥐었기 때문에 북괴가 직접적인 방법으로 수락할 가능성은 적은 것으로 외교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종래 국제관행에서 볼 때 분쟁당사자가 어떤 제의를 했을 때 상대방이 이를 직접적으로 수락한 전례는 거의 없다. 대체로 일단 다른 형태의 제의를 해서 국적 또는 제삼국에 의해 접근되고 주선되어왔다.
이런 관행에서 볼 때 북괴는 일단 거부 또는 묵살하는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며, 관망하고 상당한 시일이 지난 뒤 이와 비슷한 제의를 해올 것을 예상해 볼 수 있다. 이렇게 될 경우 제삼국이 양측제의를 바탕으로 같은 내용을 제의, 남북한대표단이 접촉토록 조청에 나설 수 있게될 것이다.
설혹 북괴가 우회방법의 접근까지 거부한다 해도 이번 제의에 깔린 실현을 위한 우리측의 의지로 보아 제삼자를 통한 부단한 압력을 예상할 수 있다. 이점에서 볼 때 첫 접촉에 제삼자의 개입에 의해 이뤄지는 길로 가게될 가능성이 많은 것 같다.
제삼자의 조정에 의한 예비회담은 상당한 시일이 걸리고 우리가 제의한 10월보다 훨씬 늦추어질지도 모른다. 여기에서 양측이 어느 정도 조정자를 신임하느냐에 따라 예비회담의 실현성은 좌우될 것이다.
본 회담의 개최시기·장소와 대표선정 등의 문제는 예비회담의 진행·결과에 따라 신축성을 갖고 협의될 것이다.
외교 「업저버」들은 적어도 「닉슨」대통령의 중공방문이 있은 뒤, 미·중공사이에 한국의 긴장완화에 대한 구체적인 성과가 있을 때 본 회담개최가 실현단계에 접어들 수 있다고 보고있다. 이때 본 회담의 대표단(양측 적십자대표)과 의제(가족 찾기 운동) 결정은 어렵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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