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공법 등의 개정논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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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국제정세가 격변하는데 따라 한국의 좌표설정과 안보문제가 활발히 논의되고 있는 가운데, 일부 국민가운데 국가보안법이나 반공법을 개정해야 된다는 논이 대두되고 있다.
국회의 대정부 질의응답 과정에서도 그런 말이 잠깐 나왔지만, 9일 「민주수호청년협의회」는 『격변하는 국제정세에 따른 국가보안법 및 반공법』을 주제로 한 공청회를 열어 세인의 주목을 끌었다.
국가보안법·반공법의 개정론이 요새 와서 새삼 「클로즈업」되는 소이는 미·중공간의 접근·화해시도로 한반도를 에워싼 국제권력 정치상의 정세가 해빙의 징조를 보이기 시작했는데, 이 두개 법률을 개정하거나 혹은 국가보안관계법규를 통합정비하지 않고서는 앞으로 국가이익의 신장을 기하기 어렵다는데 있는 줄 믿고싶다.
물론 이와 같은 주장에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니나, 예컨대 『대한민국에 적대행위를 하지 않는 어떤 나라와도 수교할 용의가 있다』 운운한 발언은 현행반공법에 저촉되는 것이 아니냐는 의문이 당연히 제기될 수 있다. 국회에서의 이러한 발언의 동기는 변화의 도전을 받아들이면서 능동적으로 국가이익을 추구해 보겠다는 충심에서 나온 이상 그것이 정치적으로는 아무런 문제를 야기하지 않았지만, 반공법의 법조문을 엄격히 해석하면 법적으로 충분히 말썽을 일으킬 수 있는 것이라 할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현존질서를 고정시키려는 법정의의 정적제약과 현재의 상태에서 벗어나려는 정치의 동적인 요구사이의 대립·충돌을 엿보게된다. 법과 사회현실 사이에 괴리의 관계가 조성되면 결국 그 법은 현실에 적응할 수 있도록 개정되어야 하는 것이 통례인데, 국가보안관계법규의 개정논의도 이 기준에 따라서 그 가부를 결정하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국가보안법과 반공법이 현행형법의 「내란의 죄」 및 「외환의 죄」의 미비점을 보완하면서 우리 사회에 있어서 공산주의자 및 그 동조자들의 활동을 봉쇄하고, 자유사회체제를 수호·발전하는데 큰 기여를 하였음은 누구도 시인을 아끼지 못한다.
그러나 동시에 그 법의 남용으로 말미암아 공산주의자나 용공주의자 아닌 사람들이 가끔 화를 입어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킨 일이 있었던 것도 또한 간과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는 주로 반공법 제4조를 확대 해석하여 「목적범」 뿐만 아니라 「결과범」까지 소추함으로써 범의 없는 자는 처벌치 않는다는 형법의 대원칙을 어기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국가보안법·반공법을 뜯어고칠 절실한 필요가 있다면 ①법조문을 되도록 명확하고 구체적으로 예시함으로써 선량한 국민이 화를 입지 않도록 해야하며 ②적대행위를 하지 않는 모든 나라와 교역하고 수교할 필요성이 늘어가고 있다는 객관정세의 요청에 비추어 한국의 국방·외교상 새 진로를 개척하는데 명백히 장애가 되는 부분을 제거하는데 중점을 두어야 할 것으로 생각한다.
미·소의 평화공존이나 미·일의 평화공존을 지향하는 대 중공접근 움직임이 국제정세의 긴장을 완화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당장에 남북간의 대립·긴장을 완화하거나 혹은 이질적인 「이데올로기」 및 사회체제상의 평화공존까지 의미하는 것으로 착각했다면 이는 중대한 오산일 것이다.
우리는 「이데올로기」의 포로가 돼서 국제정치상 고아로 전락하고 싶지 않기 때문에 국제정세의 새 조류에 순응하면서 국가이익을 추구하는 외교를 해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나 국제정치 정세에의 적응노력은 공산주의 「이데올로기」와 사회체제에 대한 반대투쟁의 중단 내지 포기를 절대로 의미할 수 없다.
우리는 한반도를 싸도는 국제정세의 변화가 눈부실수록 대한민국이 중대한 시련기에 접어들게 됨을 잘 인식하고 오히려 사상무장을 강화하여 안으로 반공태세를 더한층 철통처럼 확립하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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