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전 18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27일은 휴전협정이 조인된 지 18년이 되는 날이다. 1953년 7월27일 판문점에서 「유엔」군 총사령관과 북괴군 최고사령관 및 중공인민지원군사령관사이에 휴전협정이 조인됐으며, 그 효력발생과 더불어 처절했던 3년여의 6·25 동란은 일단 휴전으로 들어갔던 것이다.
잘 알려져 있는 바와 같이 휴전협정은 『한국에서의 적대행위와 일방무장행동의 완전한 정지를 보장하는 정전을 확립할 목적으로』조인된 것으로서 그 내용은 ① 군사분계선과 비무장지대의 설치 ②군사정전위원회 및 중립국 감시위원회의 설치 ③전쟁포로에 관한 조치 ④정치회의 소집 등을 골자로 하는 젓이었다.
그러나 휴전협정은 조인되기가 바쁘게 유린·파괴되기 시작했으며 오늘날 그 조항들은 명색만 유지되고 있을 뿐이라고 하겠다. 협정에는 분명히 『적대행위와 일절의 무장행동』을 완전히 정지하도록 돼 있음에도 불구하고 북괴는 끊임없이 휴전선상에서의 도발을 비롯해서 무장 간첩 및 공비를 남파시켰는가 하면 항공기 납치까지 서슴지 않았다.
문자그대로 완충지대가 되어야할 비무장지대에 대해 북괴는 전투진지를 구축하고 그것을 요새화 하여 긴장을 고조시키고 있다. 휴전협정의 준수를 감독하고, 어떤 위반사건이든지 협의하여 처리하기로 한 군사정전 위원회는 한낱 북괴의 상투적 선전의 설전장이 되고 말았다.
뿐만 아니라 협정 중 중요사항이라고 할 수 있는 중립국 감시단 활동 조항과 신무기 도입 및 병력증가 금지조항은 이미 폐기 된지 오래 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가 철저히 인식해야 할 것은 현 상태나마 휴전선이 유지될 수 있는 요소가 과연 무엇인가 하는 점이다. 그것은 휴전협정의 명문이나 군사정전위 때문도 아니며, 또 어떤 기적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고, 오직 군사력의 균형상태가 유지됨으로써 북괴도발이 억제되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전사상 휴전의 예는 많으며, 또 그것이 송두리째 파괴된 예도 허다하다. 중동의 경우, 여러 차례의 휴전협정이 있었지만, 전쟁은 간단없이 계속됐으며, 인지의 경우, 1954년7월의 「제네바」휴전협정이 있었지만 월남전쟁이란 대 전쟁을 다시 겪고있는 것이다.
이것은 다름 아닌 힘의 균형이 깨짐으로써 파생한 파국적인 사태의 폭발이라고 보겠으며, 우리가 휴전 18년과 함께 다시 다짐해야 할 일은 휴전유지의 요소가 무엇인가를 거듭 깨닫고 그에 대한 계속 부단한 대책을 강구하는 것이라고 하겠다.
한편 남북 대결의 긴장된 정세는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지만, 한국을 중심으로 한 주변정세는 격변하고있다. 「오끼나와」반환 협정의 조인, 미·중공해빙, 「닉슨·독트린」과 주한미군감축, 국군의 휴전선 방위전담 등 내외정세의 격변은 실로 금석지감이 있다.
이에 따라 판문점 존재양식의 변경까지 운위되고있는 실정이며 지난 7월3일 「로저스」「유엔」군 측 수석대표가 정전위의 수석대표를 한국대표로 대체할 것을 희망한 것은 그 대표적인 것이다.
판문점의 존재양식이 주변정세의 변천에 따라 바꿔져야 한다는 논리를 결코 마다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나 존재양식 변경이전에 요구되는 것은 현재 파괴·유린되고 있는 휴전협정의 정상화라 할 것이며, 그것 없이는 결코 그 변경이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그 어떤 필요성도 느낄 수 없을 것이다.
현재로 보아 남북의 긴장이 완화되리란 징조를 조금도 발견할 수 없는 이상, 판문점 존재양식변경의 시기나 여건 또한 시기상조로 보아야할 것이다. 특히 긴장완화라는 막연한 개연성만에 집착하여 냉엄한 현실을 망각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되며, 또 그런 것이 북괴의 오산을 자극하는 일이 있어서도 안될 것임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