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비즈니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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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문학은 현실을 앞지를 때가 있다. 「H·G·웰즈」나 「조지· 오웰」이 소설에서 그려낸 미래 중에는 이미 일상화한 것들이 많다. 적어도 문학이 현실사회를 반영하고있는 것만은 틀림없다.
우리 나라 소설의 등장 인물들의 계보는 바로 우리네 사회사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벌써부터 등장했어야 할 「빅·비즈니스」에 관한 얘기가 아직 우리네 소설에는 나오지 않는다.
최근에 국세청에서 밝힌 올해 종합소득세 「랭킹」을 보면 우리 나라에도 한 달에 1천만원 이상씩이나 소득을 올리는 「빅·비즈니스」의 세계는 분명히 있다.
또 이들이 우리네 경제를 지배한다고 본다면 「빅·비즈니스맨」은 마땅히 다뤄져야할 인간상들이다.
우리 작가들이 새로 우리 사회를 주름잡고 있는 이들 거대한 「이커노믹·애니멀」을 다루지 못하고 있는 까닭은 「빅·비즈니스」의 세계를 전혀 모르기 때문이라고도 한다. 그러나 정말로 우리 나라에도 「빅·비즈니스」나 현대적 기업자형이 틀 잡혀 있는 것인지는 여전히 의심쩍다고도 할 수 있다.
미국에서는 이미 30년대에 「업튼·싱클레어」니 「싱클레어·루이스」 등이 「빅·비즈니스」를 다루었다. 그로부터 40년이 지났다. 그렇다고 우리네 「빅·비즈니스」가 그만큼 뒤졌기 때문에서만은 아닌 듯하다.
얼마 전에 전경련은 경제인들의 정화운동의 구체안을 내놓았다. 그들이 제기한 낭비제지방안 중에는 「광고비의 삭감」이라는 것이 들어있어 기이한 느낌을 주었다.
미국에서는 업계의 연간 선전비 총액과 국민소득과의 비율은 2·7%, 일본에서는 1·7%로 되어있다. 대체로 「비즈니스」의 현대화 거대화에 따라 광고·선전비도 늘어난다. 현대경제의 「메커니즘」이란 대중소비층에의 침투를 위한 것이니 만큼 당연한 얘기다.
그런 광고비를 낭비 성향적 이라고 봤다는 것은 아직도 우리네 「비즈니스 맨」이 「빅·비즈니스」생리를 터득하지 못하고 있는 탓인 것도 같다. 어쩌면 그저 어쩌다보니까 「빅·비즈니스맨」으로 성장한 것뿐이 아니었나하는 느낌도 든다.
정부도 마찬가지다. 지방세원의 증가를 위해 최근에는 광고세의 신설을 검토 중에 있다는 얘기가 있다. 광고 없이 「빅· 비즈니스」는 성립되지 않는다. 따라서 미국에서는 광고비는 당연히 생산비속에 들어간다. 따라서 면세대상은 될 망정 과세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것만 봐도 한국에선 아직 「빅· 비즈니스」가 성장 될 수 있는 여건이 충분하지 못한 것 같다. 그러면서도 「빅·비즈니스」가 있다는 것은 역시 기적 같은 얘기다. 우리네 작가들이 「빅· 비즈니스」를 다루지 못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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