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동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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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선화 공주니믄 남그으지 얼어두고 맛둥바을 바메 몰안고가다..
요즘의 언어감각으로는 무슨 뜻인지 알 수 없다. 서동요이다. 국문학자들은 이 노래를 향가 중에서 제일 오래된 것이라고 말한다. 삼국유사에는 작자가 백제 무왕으로 기록돼 있다.
이 노래를 현대어로 바꾸면 아름다운 이야기가 담겨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선화공주님은 남몰래 사귀어서 맛동이(서동)를 밤에 몰래 안고 갔네.』
신라의 서울, 서라벌 길거리에서 감자(서)를 구워 파는 소년이 있었다. 그에겐 그럴만한 애틋한 사연이 있다.
선화공주를 은밀히 사랑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어떻게 그 마음을 왕실에 전할 길이 없었다. 그 소년은 서동요를 지어 서라벌 아이들이 즐겨 부르도록 했다. 드디어 이 동요는 왕실에까지 스며들어갔다. 왕실은 크게 노하여 선화공주를 귀양 보내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눈물을 머금고 귀양길에 오른다. 그 일행을 뒤따라가던 서동은 기어이 선화공주를 납치한다. 그들은 말고삐를 돌려 백제로 도망을 간다. 뒤에 그 소년은 백제의 동성왕으로 등극한다. 물론 그 눈물의 선화공주도 왕비에 오른다.
사학자 두계의 설에 따르면 이 동성왕의 아들이 바로 무령왕이 된다. 백제 제25대(501∼523년)임금이다. 거의 1천5백년 전의 이야기이다.
최근 발굴된 이 무령왕의 능은 1천수백년전의 그 아련한 향훈을 우리 앞에 재현시켜주고 있다. 1천5백년의 깊은 침묵에 잠긴 지하 현궁에 들어설 때 그 발굴학자들의 심정이 얼마나 설레었을까는 상상만 해도 가슴이 부푼다.
신문지상에 실린 선명한 사진화보가 보여주는 그 유적·유물들은 하나같이 경외와 감동을 일깨운다. 현궁의 벽에 아로새겨진 문양은 천년 선조의 체온을 느끼는 듯 싶다. 그뿐이랴. 마치 불길이 정연히 피어오르는 듯한 금빛의 왕관은 눈이 부시다. 그 우아한 선은 백제불상의 전형적인 아름다움을 연상시켜준다.
백제불상들은 다른 어느 불상들보다도 인간적인 풍정이 어려있다. 자못 평범한 미소로 우리의 마음을 이끌어주는 것이다. 그 선들의 흐름은 별로 추상화되지도 않고 우아한 인간의 모습으로 「어필」하고 있다. 바로 무령왕의 왕관은 강박된 위엄도, 허세도 없이, 마치 불길이 조용히 피어오르는 듯한 정감을 품고있다. 평화와 안녕을 기리던 바로 우리 선조의 정신을 보는 기쁨은 여간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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