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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권리」수호한 호헌정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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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지난 7월2일에서 5일까지 나흘에 걸쳐 전문 연재된 바 있는 「뉴요크·타임스」사건처럼 숨막히는 긴장과 세계적 주시 속에 결정된 판례도 일찌기 없다. 그렇다고는 하지만 우리 나라 대법원의 중요판결문도 완재하는 사례가 극히 드물고 법원보도가 소홀한 현실에서 많은 양의 법관의 의견에 지면을 할애한 사실은 매우 환영할 일이며, 우리 신문편집 방향의 개선의 획기적인 계가가 될 것을 희망한다. 사실 사회적으로 물의가 많은 형사사건에 있어서 검찰의 기소문이 전재되는 예는 종종 있었던 터이나, 대법원 판례는 그것이 어떠한 성질의 사건에 관한 것이건 여태껏 소홀히 다루어졌던 것이 실정이다.

<사상최초의 규제요구>
법원은 물리적으로 가장 무력한 권부일뿐 아니라, 연로한 대법관을 볼 때 진정 허약하다하여 지나친 표현이 될 수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미연방대법원이, 행정부의 전공사항으로 인식되고 있는 외교·군사에 관련된 기밀문서의 신문게재를 금지해줄 것을 사상 최초로 국가안보의 이름아래 청구한 정부의 심각한 주장을 언론 및 출판의 자유, 그리고 국민의 「알권리」가 민주정치의 대전제이며 기본적이고 불가결한 요소라는 견지에서 부인할 수 있었던 사실상의 「힘」은 일반국민의 철저한 헌법적 감각과 사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에 뿌리박고 있다. 헌법적 감각과 사법부에의 신뢰와 지지를 배양하고 높이는데 있어서 언론의 사명과 역할은 중차대한 것이다.

<개별 의견작성 이례적>
이번 「뉴요크·타임스」 사건에서는 9인의 대법관이 각기 개별의견을 작성하였는바, 이는 매우 이례적이며 어쩌면 한 사건에 대한 개별의견의 수에 있어 기록에 속한 것이다. 이는 역사적인 본사건의 중대성에 비추어 자기 나름대로의 견해를 남겨놓기를 모두가 바랐던 까닭이며, 이로 보더라도 각 대법관들이 얼마나 이 사건에 진지하게 임하였던가를 짐작할 수 있다.
판결이 선고되기 전부터 정부의 청구가 기각될 것이라는 예상은 일반적이었다. 그것은 「화이트」 대법관이 지적하고 있는 것처럼 「미국의 헌정 하에서 자타가 공인하는 바와 같이 언론기관이 향유하는 사전검열로부터의 비상한 보호」와 또 「뉴요크·타임스」가 주장한바와 같이 보도된 문언의 내용이 1968년을 거슬러 올라가는 사실에 관한 것이어서 하나의 역사적 자료에 부과하며, 1971년의 시점에서 그 문서의 공개가 국가의 안보를 해치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점으로 미루어 생각한 예측이다.
또 하나의 근거는 현재 비록 연방대법원의 구성이 「닉슨」 행정부의 출발이래 보수적 법관으로 충원이 되어 「워런」 대법원장 시대의 기본권확대의 경향이 정체에 이르렀다고는 하지만 평시에 사상최초의 행정부에 의한 보도금지명령의 신청은 인용되기 어렵지 않겠느냐는 것이었다.

<사전 검열법적 근거없어>
이러한 추측을 벗어나서 이제 내려진 판결의 이유를 살피면 가장 구체적인 것으로 1917년에 제정된 방첩법의 입법연혁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여러 법관의 의견에 피력되고있는 바와 같이 제1차 대전당시에 대비하여 제정되었던 것으로 그 전시 하에서도 심의과정에서 국방에 관한 각종 정보의 보도를 금지할 수 있는 광범한 권한을 대통령에 부여한 규정을 의식적으로 삭제하였던 사실에서 입법부가 보도의 사전금지를 의도하지 않을 것으로 보고, 따라서 현행법상의 보도금지 또는 사전검열의 법적 근거가 흠결해 있음을 이유로 하고 있다.
「스튜어트」대법관은 『적어도 본원의 조사결과 의회의 해당 입법조치가 없었기 때문에 본인은 행정부와 법원의 본연적 권한이 신문보도를 억제할 광범한 잠재력을 가진 제재력으로 확대시키는 조처에 동의할 수 없다』고 하고있으며 「화이트」대법관은 『본인은 문제된 문언의 일부에 관한 한 행정부의 견해가 맞는다고 생각』하면서도 다수결론에 동조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이라고 추측되는 터이지만, 「버거」대법원장이 다수결론에 반대하며 『하급심은…글자 그대로 온종일 작업을 벌였어도 본 건의 대상문서들을 검토할 수가 없었고 따라서 소상히 알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본원도 이보다 나을 것이 없다』고 하여 다른 두 반대 의견의 법관과 더불어 심리의 졸속을 비난하고있으나 다수의견의 법관들은 이점에 별다른 언급이 없음은 흥미 있는 일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 정부가 당해 기밀문서의 공개가 「국가안보에 중대하고도 회복할 수 없는 피해」를 가져올 것이라는 「무거운 입증책임」을 다하였다면 별도의 결론이 내려졌을 것이라는 여운은 있다.
그러나 짐작컨대 전시 또는 기타의 비상사태가 아닌 경우에 그러한 입증은 우선 가능하지 않을 것이라는 예상과 또 월남전과 같은 국지적이며 비공식적 전쟁으로는 전시 또는 비상사태로 보지 않는 것이 분명하다. 그리고 전시라 할지라도 1931년의 「니어」대 「미네소타」사건에서 방론으로 예시된 바와 같은 즉 「전시에 정부가 신병의 충원계획·수송일자·병력의 수와 배치 등에 대한 보도를 금지」하는 것이나 그에 상하는 정보의 보도금지의 테두리에서 크게 확대될 수 없을 것도 예상할 수 있다.

<의정 희생한 기밀 부가>
그러나 다수결론의 저변에는 자유로운 보도와 계도된 시민이야말로 민주정치의 기본이며, 따라서 「………언론 또는 출판의 자유………는 이를 박탈하거나 제한하는 법률을 제정하지 못한다」는 연방헌법 수정 제1조의 규정은 외교·군사에 관한 대통령의 권한에 관한 헌법규정에 우위성을 부여하고있다.
그 까닭은 모든 국가시책에 있어서와 마찬가지로 외교적·군사적 정책의 수립과 시행에 있어서도 광범한 국민의 지지를 기반으로 실현되어야 한다는 미국헌정의 철학에 연유한다 하겠다.
이러한 철학은 상원에 의한 조약의 비준이나 하원에 의한 선전포고 등의 헌법규정에서 엿볼 수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대외정책결정에서 국민의 의사를 배제하지 않은 것을 뜻한다. 85세의 노령으로 연방대법원의 자유파의 첨단을 걷는 「블랙」대법관은 「계도된 대의정치 희생하의 군사적·외교적 기밀의 보지는 연방을 위한 진정한 안보를 제공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지적한다.
그리고 본 판결이 주로 원용한 선 판례의 하나인 1964년의 「뉴요크·타임스」대 「설리번」판결에서 싹튼 경향으로 삼권상호간의 견제뿐만이 아닌, 언론을 통하여 check and balance의 개념을 새로이 국민과 정부, 통치자와 피치자간에 적용하려는 월지는 본 판결에서도 찾아볼 수 있으며, 여기서 자유로운 언론과 국민의 알 권리의 중대성을 다시 인식하지 않을 수 없다.

<이태노교수약력>▲54년 서울대학법대졸▲5년 미남 「일리노이」대학 상대졸▲59년 「예일」 대학원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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