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빙「무드」의 새 징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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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간의 대화를 가능케 하기 위해 판문점 군사정전위의 수석 대표를 한국 대표로 바꾸어야 한다』-. 「로저즈」「유엔」군 측 수석 대표의 제안은 그것이 실현될 경우 남북의 직접 대좌와 대화를 가능케 할 것이라는 점에서 극히 주목할만한 발언이다. 금년 들어 판문점에는 몇가지 중대한 사태 발전이 있었다.
「유엔」군 측에 의해 제기된 비무장 지대의 평화적 이용. 중공이 판문점 회의에 대표를 참석시키겠다고 통고한 사실에 이어 「로저즈」대표의 새 제안이 나온 것은 동서 해빙, 「핑퐁」외교 이후 화해「무드」를 조성하고 있는 미·중공 관계가 한반도 정세의 긴장 완화에 입김이 불고 있다는 징후다.
한반도에서 계속되어온 자유 진영과 공산 세력의 대립은 바늘구멍 만한 통로도 없는 긴장의 연속이라는 점에서 세계의 다른 분단 지구와도 사정이 달랐다.
긴장 상태는 무력 대비를 촉진한다는 점에서 미국은 한반도의 정세 완화를 내다본 국제 정치상의 「머누버링」을 계속해 왔다.
한반도의 긴장 완화에 관한 미국의 정책은 「포터」주한미 대사가 「사이밍턴」청문회에 낸 보고문에 단적으로 나타나 있다.
『남북한의 대화가 이루어질 수 있는 분야를 탐색하는 취지에서 북괴에 눈을 돌리는 게 좋으리라는 미국 견해를 한국 측과 토의할 수 있는 권한을 국무성에 요청하여 수락 받았다』 『한국이 통일 문제에 대한 요지부동의 자세보다는 대화가 더 나은 것으로 믿고 있다』-.
「로저즈」제안을 포함한 판문점에서의 일련의 사태 발전은 바로 이러한 미국 정책과 그 축을 같이 하고 있다는 점은 앞으로의 한국 정세의 진전을 판단하는 지표가 될 것만은 분명하다.
「로저즈」제안은 한국이 휴전 협정에 서명하지 않았고 따라서 협정상의 권리와 의무를 이행하는 당사자가 아니라는 점에서 현실적으로 문젯점을 안고 있다.
한국 휴전 협정 제2조 B항 군사정전위원회 조항은 『정전위는 10명의 고급 장교로 구성하되 그 중의 5명은 「유엔」군 총사령관이 이를 임명하며 그 밖의 5명은…』라고 규정하여 수석 대표의 자격 요건 규정은 없다.
따라서 협정 당사자가 아닌 한국의 경우도 「유엔」군 총사령관의 임명에 따라 군사정전위의 회담 당사자로 참석할 수 있게 돼 있다.
그러나 협정 전문이 『…하기의 서명자들은…하기 조항에 기재된 정전 사건과 규정을 수수하며 그 제약과 통제를 받는데 동의한다…』고 규정하고 있기 때문에 협정 당사자가 아닌 한국이 협정 규정에 의해 설립되는 정전위 대표 자격을 가질 수 있는지 해석상 문제가 있다.
이러한 조문상의 방법 문제보다 그에 따른 절차와 그것이 갖는 정치적 의미가 보다 큰 난관이 될 것 같다. 만약 한국이 정전위 수석 대표를 맡는다면 한국이 『휴전 협정을 준수하겠다』는 서약을 한 후 신임장을 정전위에 제출하는 절차를 거쳐야 한다고 관계자는 보고 있다.
휴전 협정 준수 서약은 당시 서명을 거부한 유일한 이유인 북진 통일의 가능성을 포기하는 것에 연결되며 신임장 제정은 협정 당사자로 되어 있는 북괴를 국가로 인정하는 사실상의 결과를 가져올 우려가 있다.
결국 한반도의 긴장 완화를 겨누어 던져진 미국의 새 제의는 한국의 유일 합법성을 해치지 않는 범위에서 문젯점을 해결하는 방안이 마련되어야만 실현될 수 있는 것이다.

<윤용남 기자>

<정세 변화 따른 정상화>
▲이동원 의원 (공화·전 외무장관)
한국이 휴전을 반대했었지만 휴전은 기정 사실이며 그간의 여건도 크게 변화했다. 휴전 상태나 그 상태가 파기되는 상황이 한반도의 일이고 일선은 한국군이 맡고 있으며 국제적으로는 해빙 「무드」가 고조되어 있다.
판문점 회담의 수석 대표를 한국 측이 맡는 것은 이런 여건을 감안할 때 오히려 정상일 것이다.
이를 북괴의 승인이나 외교적 「채늘」로 생각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종전」아닌 「휴전」상태에서의 회담이니까 진중의 교전 당사자 대좌로 생각하면 정치적 논란의 여지는 없을 것 같다.

<비 미화 인상 너무 강해져>
▲편용호 의원 (신민·전 부총무)
「닉슨·독트린」에 따라 미국이 점차 한국 방위에서 발을 빼려는 인상을 주고 있는 이 시기에 정전 회담 수석 대표를 한국군으로 교체한다는 것은 한국민에게 주는 심리적 영향이 클 것이며 찬성할 수 없다.
또 법적으로 휴전 조인 당사국이 아닌 우리가 수석 대표를 맡을 수 있는지 여부, 북괴를 인정하지 않고 있는 우리가 수석 대표를 맡을 때 북괴를 하나의 국가로 승인하는 결과가 되지 않겠는지 우려된다.

<미학자들 오래전 주장>
▲박봉식 교수 (서울대 문리대·국제 정치학)
「로저즈」 소장의 발언은 군사적 개입의 정도를 줄이고 휴전선을 포함한 한반도의 안정화에 목적을 두고 있는 미국 정책의 표현이라고 볼 수 있다.
한반도의 안정화를 위해서는 남북간의 오해가 없어야 하고 그러려면 대화 등을 포함한 접촉이 필요하다고 보아 이 같은 의사를 밝힌 것 같다.
이 같은 견해는 지난해 통한 문제 「세미나」때 벌써 미국 학자들이 표시했었다.
현실적으로 한국이「유엔」군의 구성원이고 「유엔」군의 작전 지휘권 아래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법적으로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휴전 협정 조인 당시 우리가 조인 당사자가 아니었다는 점에선 해석상 문제가 없는 것도 아니다.
즉 「로저즈」소장의 제안을 우리가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엔 조인 당사자가 아니라는 것으로 설명되겠지만, 하려는 경우엔 우리가 조인 당사자도 아니고 「유엔」가입도 못하고 있다는 점에선 이론적으로 다소 난점도 있다.
문제는 우리의 태도 결정에 따라 처리될 수 있으나 분명한 것은 이 같은 주변의 객관적 상황 변화에 대처하는 준비가 필요하다.

<한국 의사 타진했어야>
▲김명회 교수 (연대·한국 정치학)
「닉슨·독트린」을 급「템포」로 실현해 가고 있는 미국으로서는 한반도의 긴장 완화와 중공의 판문점 복귀에 때를 맞추어 남북간의 대화를 모색하려는 정치적 노력으로 볼 수 있겠지만 군사정전 회담은 미국 단독의 문제가 아니고 「유엔」과 관련된 문제라는 점에서 정치적으로도 어려움이 있다.
특히 정치적으로 대 전환을 이루는 이러한 문제가 우리 나라와 충분한 대화 없이 일방적으로 논의되고 있는 것은 유감스런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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