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이 아침에

휴전선 남쪽의 아들, 휴전선 북쪽의 '국천'

미주중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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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네번째 북한을 방문했다. 우리 부부의 안내를 맡은 아가씨는 설향이란 처녀였다. 앞선 여행에서 정이 들어 수양딸 삼은 설경이에 이어 설향이를 둘째 수양딸로 삼기로 했다. 설향이는 성심껏 우리의 일정을 보살폈다. 어느 날 저녁 9시를 넘긴 시간이었다. 그녀의 안색이 좋지 않았다. "설향아, 어디 아프니?" "일(관계) 없습니다. 어제 밤 호텔 냉방기가 너무 추웠나 봅니다. 몸이 으실으실 춥고 떨리는데 인차(곧) 괜찮아 질겁니다."

옆에 있던 남자 안내원 영길 동생이 자기는 설향이 몸이 안 좋은 것을 알고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자기들 임무는 우리를 즐겁도록 안내하는 일이라, 설향이가 숨기고 있다가 호텔로 돌아오니 긴장이 풀어져 더 아픈 것 같단다.

호텔에 도착한 우리는 3층 식당으로 향했다. 하지만 이미 문이 닫힌 뒤였다. 이 호텔 지하에는 다른 식당으로 안내했다. 3명의 손님이 스시바에서 술을 마시고 있었다. 설향이가 봉사원에게 물어보았지만 시간이 끝났다며 난색을 표한다. 설향이는 "아, 이를 어쩌나… 해외동포 손님인데 어떻게 안 되겠습니까"라며 간청했다. 봉사원은 잠깐 기다려 보라며 주방으로 들어가더니 미소를 지으며 나온다. "어서 앉으십시오"라는 말과 함께.

내일 만날 시간 약속을 하고 설향이와 헤어졌다. 냉면을 먹고 호텔방으로 가려고 로비로 향하는데, 설향이가 멋진 젊은 남자와 의자에 앉아 다정히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남편이 흥분해 소리쳤다. "어?! 쟤 좀 봐, 아프다는 아이가 이 늦은 시간에 남자친구는 만나고…."

눈이 마주친 설향이는 남자와 함께 우리에게 다가왔다. 설향이는 "제 남동생입니다, 집에서 약을 갖고 왔습니다"고 소개했다. "리국천입니다." 남자답게 잘 생겼다. 늠름해서 말을 걸어보고 싶었다.

"'국천'이라 그랬나요?" "네, 조국을 하늘처럼 받들라고 아버님께서 '국천'이라 지으셨답니다."

"아, 참 좋은 이름이네요. 지금 뭘 하고 있어요?" "평양외국어대 러시아어과 4학년입니다."

"곧 졸업이네요. 졸업하면 무얼 할 예정이에요?"

"군사복무를 할 예정입니다. 제가 원하면 직장을 가져도 되지만 저는 꼭 군사복무를 하고 싶습니다."

설향이가 자랑스럽게 동생을 바라보며 자기 역시 군대를 다녀오지 않은 남성과는 결혼하지 않겠다고 한다. 국천이와 헤어지며 인사를 나눴다.

"그래 잘 가요. 집에 가면 부모님께 우리 인사 전해주세요. 그리고 군대에 가면 몸조심 잘 하고."

"네, 명심하겠습니다. 부모님께선 두 분을 잘 아시고 계십니다. 누나가 하루에도 몇 번씩 집에 전화한답니다."

방에 들어서니 아들 생각이 난다. 아들은 미국·한국 이중국적자다. 내년에 대학을 졸업하면 한국군에 입대하겠단다. 불현듯 내 둘째 수양딸 설향이 동생 국천이와 아들이 휴전선을 사이에 두고 마주칠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그날 밤 국군 아들과 인민군 국천의 모습을 상상하며 마음이 너무 무거웠다.

한반도의 평화통일을 위해 다시한번 간절한 기도를 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