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대문보호에 사표 「바리케이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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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문화재위원회는 최근 위원들 자신이 이 기구의 무용론을 들고일어남으로써 위원회의 존폐문제와 직결되는 최대의 위기에 봉착했다. 문화재위원회 가운데 특히 제1분과위원(유형 문화재분과)들은 지금 한창 공사중인 지하철부설과 남대문·동대문의 보호문제를 놓고 『이 이상 견딜 수 없는 한계점에 이르렀다』고 누적된 불만을 터뜨리고 있다.
지하철이 국보 제1호인 「남대문」의 3m옆을 파고 지나가게 되고, 보물 제1호인 「동대문」의 경우에는 아예 그 지반 밑을 뚫고 갈 계획임에도 『벙어리가 된 채 구경만 하는 위원회라면 자폭해 마땅하다』고 한 위원은 말하면서 적어도 제1분과위는 앞으로 위원회의 성원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제1분과 위원 중 진홍섭 위원(이대 박물관장)은 지난달에 이미 자퇴의 뜻을 당국에 전달했고, 5월과 6월에 걸쳐 지하철문제를 토의하던 회의 도중 자리를 박차고 나온 위원들도 수 명이나 된다.
이선근 위원장을 비롯하여 10명으로 구성된 분과위원 중 김원룡(국립박물관장) 손보기(연세대 박물관장) 최순우(국박 학예연구관) 임창순(사학가) 조명기(동대 교수) 제 위원들 역시 『문화재 보호는커녕 그 파괴를 방관하는 문화재위원회는 역사의 심판을 받게될 것』이라는 전제아래 『아무리 열을 올려 토의를 해봤자 행정담당자들이 묵살해버리고 오히려 당국의 개악행위를 뒷바라지나 해주는 결과를 의결하는 기관밖에 안될 바에는 거기에 참석하는 것조차 부끄러운 일』이라고 이구동성으로 실토한다.
위원들이 이같이 위원회자체에 대해 비판적인 것은 첫째 위원회를 주관하고있는 문화재관리국의 미온적인 태도에 기인한다.
국보 제1호인 「남대문」의 경우, 그 보호구역이 처마 밑으로부터 50m로 지정돼 있다. 그 보호구역 안에서 어떠한 현상변경을 하는 일이라도 소관 문공부장관의 사전 승인을 받아야하며 또 장관은 위원회의 자문을 얻어야한다고 문화재보호법에 명시돼 있다.
그런데 불과 3m밖의 지하를 10m나 파고 들어가는 큰 공사가 착공된 지 3개월이 지남에도 문공부나 그 예하 관리당국은 별로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는 것이다.
법에 규정 바에 의하면 그 공사를 즉각 중지시켜야 하고 혹은 공사 주관자인 서울시를 고발 조처해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문화재 행정당국은 공사승인도 중지요구하지 않은 채 무책임하게 방관하고 있는 형편이다.
둘째는 백보 양보하여 사후승인(공사묵인)을 하더라도 구체적인 조사와 타당성을 검토해야 할 것이 아니냐는 점이다. 지하철 문제의 논점이 되고 있는 진동에 대하여 문화재관리국은 서울시에 세 차례의 해명서를 요구했을 뿐이고, 그것을 과학기술연구소에 문의하고 있는데 그 해답이 어떤 것일지는 아직도 미지수이다. 서울시가 제시한 이제까지의 자료는 『진동에 관한 구체적인 내용이 없고 또 그것은 외국의 예일 뿐 한국건축에 대한 「데이터」가 아니다.』 그런데 관리국은 그런 서류이외엔 아무런 특별 조사 위나 연구대책을 세우고있지 않으며 위원회의 요청마저 묵살하고 있다.
8백t 내지 1천t의 하중을 받고있는 남대문은 현 지표에서 1m 속까지 잡석으로 기초를 하였고 그 밑 지반은 석비례층. 기후변화에 까지 민감한 고 건축이니 만큼 지진계 실치 등 철저한 조사가 아쉽다고 신영훈 전문위원은 말한다.
셋째, 문화재위원회의 존재 의의에 대해 회의적으로 생각하는 가장 주요한 이유는 위원회의 기능악화와 권한상실이다.
작년 9월 문화재보호법을 개정, 의결기관이던 위원회를 단순한 자문기관으로 떨어뜨린 이래, 관리국은 위원회의 요청이나 결정을 『안 들어도 그만』이라는 태도.
개정되기 이전 10년간의 문화재보호법 제2장 문화재위원회 조항에 의하면 장관의 자문에 응하여 조사·심의하고 나아가 의결권이 주어져 있었다. 그런데 문화재 업무를 정치적·행정적으로 처리하려할 때 위원회가 항시 가로 걸리므로 개정 법에선 「자문사항」을 막연하게 「심의사항」으로 그쳐 형식적인 자문기관으로 위축시킨 것이다. 이번만 하더라도 관리국장은 서울시 도시계획의 일원으로서 공사를 벌써부터 알고있었을 터이지만 착공 후 뒤늦게 위원회에 상정한 셈이다. 이런 사후보고승인은 경복궁 담의 신설문, 창경원 마당의 포도 「블록」깔기, 태종 무열왕릉 앞의 「불도저」 공사 등 사례가 허다하므로, 위원들은 이번 기회에 「오명의 위원회」로부터 손을 떼자는 데 뜻을 모으고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종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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