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지 않던 박 대통령|최정희<소설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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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1961년이 저물어가던 날 나는 어느 신문사의 심부름꾼으로서 박정희 최고회의 의장을 만났다. 그때 나는 결코 혼자 그를 방문하려고 하지는 않았다. 편집국장이며, 적어도 몇 사람이 함께 방문할 것으로 신문사와는 약속이 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웬 영문인지 편집국장은 고사하고 속기사도 없이 「최고회의」 간판이 붙은 건물 속에다 나만 실어다 놓는 것이었다.
모두들 무섭다, 무섭다하는 인물을 단 혼자서 만난다는 일이 후두두 하기는 했으나 한편으로는 무서우면 얼마나 무서우랴 하는 생각도 들어서 그의 집무실에 수월히 들어설 수가 있었다.
방이 크고 너무 훤하다. 크고 너무 훤한 방에서 제일 먼저 악수를 했다. 손이 차고 빳빳했다.
성격도 차고 빳빳할 것 같이 느껴졌으나 이런 방에서 누구와 더불어 얘기해 본 일이 없는 나는 신문사에서 적어준 「메모」지를 조물락 거리며 『이런 방에서 얘기가 될 것 같지 않아요. 술이라도 마셔야 말이 나올 것 같은데요』해 버렸다.
이 말에 박정희 최고회의 의장은 술은 나중으로 미루자는 여유 있는 대꾸를 해주었다.
그러나 웃지는 않았다. 이런 경우에 사람들은 약간이거나 또는 많이 웃을 수도 있을 텐데 박 의장은 아무런 표정도 드러내지 않았다.
좀 어떤 움직임이 있었는데 그 검고 큰 안경 때문에 살펴지지 않았던지 모를 일이다.
『안경은 왜 쓰세요?』
『밤 두시 넘어서까지 깨어있게 되니 눈에 피가 져요. 그래서 쓰지요.』
『자네 왜 사진을 안 찍구 들락날락하기만 하는가? 내가 웃기를 기다리는 건가?』
박 의장이 사진기사를 가볍게 힐책했다.
『좀 웃으세요. 웃지 않는 정치가는 「팟쇼」라던데…. 』
『쓸데없이 웃으면 뭘 해요.』 박 의장은 이 말도 덤덤히 해버렸다. 자기의 장관이 웃기를 기다리던 사진기사는 끝내 웃지 않는 박 의장을 찍고 말았다. 얘기가 계속되는 사이에 그의 측근자가 몇 번이나 내가 물러나기를 독촉했다.
각하가 점심을 안 하셨다느니 십오분이 한시간이 된다느니 하며 조바심을 했다.
박 의장은 얘기만 재미있으면 얼마든지 좋다고 측근자를 달래곤 했는데 예정한 20분이 한시간이 넘도록 박 의장은 화제엔 인색하지 않았으나 그 오랜 사이에 한번도 웃지는 않았다.
근자에 와서는 얼굴 밖으로 입이 나갈 만큼 웃고있는 사진을 구경하게 되는데 쓸데없이 웃으면 뭐 하느냐 던 그가 그렇게 웃고있다고 해서 크게 달라졌다고 보지 않는다. 웃을만한 일이 있어서 웃었다면 그만인 것이다.
웃건 웃지 않건 우리는 그가 이 나라의 대통령으로서 소신껏 일해 주기를 바라고 있다. 일에도 이런 일, 저런 일이 있을 것이다. 내가 바라고 싶은 것은 서로 믿고 사는 사람들이 많은 세상을 만드는데 힘을 기울여 줄 일이고, 그리고 누구 나가 마음속으로 웃으며 살 수 있도록, 골고루 잘 사는 세상을 만들어주었으면 하는 것이다. 인간의 「삶과 죽음」이야 어떻게 하는 수 없겠지만, 그 밖의 다른 일이야 힘을 기울이면 될 수 있는 일이 아니겠는가. 대통령에게 뿐 아니라 이 말은 나 자신 에게도 하고 싶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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