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4)마라톤 중흥의 천리역주|글 노진호·사진 최정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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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마라톤 재건의 여망을 안고 살오른 젊은 건각들이 힘차게 대지를 내딛고 북으로 달린다. 설움과 울분을 내딛는 한발 짝 한발 짝 속에서 한국 마라톤이 국제 무대에서 조락한지 15년만에 힘찬 심장의 고동을 다시 듣는다.

<손기정 선수 피크로 개화>
1932년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제 10회 올림픽에서 김은배가 6위에 입상한 것이 효시가 되어 1936년 베를린·올림픽에서 손기정이 2시간29분19초로 세계신기록을 세우면서 피크를 이뤘던 민족의 굳셈을 지금도 우리는 잊지 않고 있다.
더구나 김은배·손기정이 잃었던 조국에서 이룩한 그 쓰라린 마라톤 사의 감격과 아픔은 민족의 피와 함께 영원히 흐르고있다.
조국 광복과 함께 이어진 마라톤의 전통은 1946년 보스턴 대회에서 서윤복이 2시간25분39초F로 주파, 처음으로 태극마크를 달고 떳떳하게 월계관을 써 광복의 환희에 묻힌 민족의 심장을 뛰게 했었다.
이어 1950년 역시 보스턴 대회에서 1위 함기용(2시간32분39초F), 2위 송길윤(2시간35분58초), 3위 최윤칠(2시간39분45초F)로 3위까지를 휩쓸어 한국 마라톤의 개화기를 구가하며 굳센 민족의 의지는 세계를 지배했다.

<끈기 위주로 과학화 뒤져>
그러나 이후부터 한국 마라톤은 국민의 열광적인 성원과 향수를 외면한 채 1952년 헬싱키·올림픽에서 최윤칠이 2시간26분36초F로 4위, 1956난 멜버른·올림픽에서 이창훈이 2시간28분45초F로 역시4위에 머물어 아쉽게 나마 명맥을 지키더니 1958년 제3회 아시아 경기대회에서 이창훈이 2시간32분55초라는 어설픈 기록으로 아시아 왕좌를 지킨 것을 종장으로 국제결전장에서 시들고 말았다.
민족의 환호, 열띤 함성이 사라진 것은 국제 마라톤 추세가 급격히 스피드 화하고 과학화하는데 있다.
한국 마라톤의 영광은 끈질긴 인내, 패기 찬 정신 및 강인한 체질만으로 유지된 것 뿐-.
세계 마라톤은 해마다 스피드 화, 호주 클레이튼이 마의 벽이라던 10분대를 넘어 2시간8분33초6으로 세계신기록을 마크하고 있으며 이웃 일본만도 우사미가 2시간10분37초8로 아시아 최고기록을 유지, 10분대를 지키고있다.

<20분 벽 무너뜨린 후 답보>
이런 세계의 급작스러운 활기찬 추세와는 달리 한국 마라톤은 고작17분대에 허덕이고 있는 안타깝고 서글픈 현실에 놓여있다.
손기정의 30분대 돌파, 서윤복의 25분대 주파 등 세계 마라톤 레이스의 신기원을 앞장서 주도하던 한국 마라톤은 작년 김봉래가 2시간19분07초로 처음으로 20분 벽을 무너뜨린 후 해마다 제자리걸음 속에 몸부림치더니 69년 제50회 전국체전에서 박봉근이 2시간18분18초로 3년만에 힘겹게 19분 벽을 넘어서는 다시 악순환의 연속이었다.
이런 추세 속에 70년3월 김차환이 제41회 동아마라톤 대회에서 2시간17분34초9를 기록, 불과 5개월만에 17분대에 도달, 뒤늦게나마 페이스를 찾는 듯 했으나 또 다시 완전히 제자리걸음 속에서 민족의 여망과 열띤 환호도 잊혀지고 있는 실정이다.

<10분 단축해야 세계수준>
세계 마라톤 계가 2시간8, 9분대에서 쟁패하는 오늘날 그보다 10분이 뒤진 한국 마라톤 을 중흥하는 것은 과학화와 스피드 화뿐이다.
장래가 촉망되는 새싹(중·고생)을 발굴하여 철저한 체력관리와 규칙적인 트레이닝을 통해 스피드를 길러 용기만으로 밀고 온 마라톤 풍토를 바꿔 세가 대열에 끼도록 훈련해야 한다.
1천2백60여리, 전장 504.05㎞, 남과 북을 잇는 목포∼서울간 대 중앙 역전 경주대회에 출전한 중·고교선수 90여 건각은 민족의 줄기찬 마라톤 중흥의 염원을 안고 치닫고 있다.
전남북·충남·서울을 거치는 동안 푸른 산과 들, 무르익는 국민의 열띤 열기를 맛보며 한발 짝 한발 짝 힘차게 내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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