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학계서 심판 받는 한국학의 성과(1)|하와이대 국제학술회의 발표 논문초|한국의 지적·심미적 전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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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미적 전통>김원용 <국립박물관장>
한국미술의 특징은 첫째는 무작위주의, 둘째는 기능주의, 세째는 자연주의라고 할 수 있는데, 근본적으로는 자연주의가 바탕을 이루고 있다.
왜 자연주의가 나타나는가를 생각해보면 몇 가지 이유를 들수 있다.
한국의 지반이 지질학적으로 노년기에 있어 높은 산이 없고 대체로 둥글둥글한 모양을 하고있다. 이 때문에 여기에 사는 사람들의 마음도 평화적이고 낙천적이다.
한국인의 생활은 역사적으로 고달픈 것이었음에도 천진난만하고 평화로운 성격을 띠고 있다.
그러나 과연 한국인이 평화스런 민족인가 의심해본다. 산이 낮기는 하나 그 수가 많고 골짜기는 가파라 지역성이 강하고 지방의 방언도 많다. 따라서 다른 지방에 대한 적대도 심하니 어떻게 자연스럽고 평화적인 민족인가 의문을 제기할 수도 있다.
그러나 고래로 한국인의 구성은 피라밋형이다. 소수의 상층계급과 대다수의 평민인 가난한 농민으로 돼있다. 악질적인 자는 일부의 양반이었고, 농민들은 땅을 믿고 땅에 의존하는 사람들인 만큼 정직했다. 이 농민 적인 정직이 표현되어 나타난 것이 한국의 미술이었다.
한국미술은 그것이 고생스런 생활가운데서 나온 만큼 장식성이 적은 반면에 기능위주였다. 한국의 사발이 아무 무늬도 없는 그릇이었음을 보면 쉽게 알수 있다.
장식은 대체로 일시적인 미감이요, 보면 볼수록 싫어지게 되기 일쑤다.
인공적인 것, 장식식인 것의 배제- 이것은 소재의 미를 살리는 것이며, 이런 미술이 무작위의 미술이다. 순박한 이조백자, 나무 결만을 살린 목공품 등은 한국미술의 표본들이다. 이것들은 현대인에게도 순수하게 받아들여진다.
이 순수성의 경지가 선의 세계이다. 일인들이 다도에서 경도한 것도 이것이었다. 선적인 것을 이조인은 그냥 만들어 내놓고있다. 사고 이전에 미를 나타내고 있다고 나쁘게 말하면 그것은 민예요, 농민예술에 불과한 것일 수 있다. 순수미술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은 어느 의미로 가능한 일이다.
한국미술을 시대적으로 보자.
삼국시대에는 중국의 영향으로 작품을 내놓았으며, 중국적 요소를 나타냈다. 그러면서도 한국적인 자연주의의 미술품과 벽화·조각·토기 등을 생산했다.
통일신라 때는 당과의 긴밀한 관계로 당 미술의 영향도 컸으나 반비례적으로 신라 미를 나타내고 있다. 표현주의 적인 것은 아니지만 인간미를 나타냈다.
고려에 이르러서도 송의 영향이 컸으나 고려자기 등은 한국적 특색을 강하게 표현했다.
이조에 들어와서는 농민의 감정이 가장 잘 나타났다. 한국미술에 영향을 끼쳐오던 불교가 이조에 와서 후퇴한대신 유교가 대두됐으나 유교는 미술과는 무관했으므로 민중의 미의식이 구애 없이 구현되었다.
이조 말에 이르러서는 한국미술의 전통이 흐려졌으며 많은 타락상을 보였다. 현재도 전통이 많이 없어진 것이 큰 문제로 되고있다.
고대인들이 기능을 위주로 하고 세부를 소홀히 한 것은 일면 오늘날의 날림공사의 정신을 낳은 것으로도 해석된다. 우수한 미술품이라는 고려자기마저 그 바닥은 소홀히 취급됐다. 순수성을 또 전체의 미를 중시한 정신은 현대에도 살아있다.
지역적으로 볼 때 북한에선 언제나 강한 미, 표현주의 적인 요소를 지녔다. 경상도지역은 신라 이래로 고졸하고 보수성을 지닌 근엄을 보였다. 고구려의 조각과 벽화, 신라의 불상과 토기는 각기 그 성격을 잘 나타낸다. 고려미술은 이 양자의 결합으로 활기를 살린 미술이었다.
한편 서남지방은 백제이래 세련된 사람들이었고, 곡창지대이기 때문에 생활안정으로 미술에서도 자연주의적이면서 세련된 미를 잘 구사했다. 백제 불상의 인간미, 강진과 부안에서 만든 고려자기의 세련미를 보면 잘 알수 있다.
한국미술은 시대적 지역적 차이가 있으나 자연적 인간적 어프로치가 지배적이다. 이것은 농민적 체념에서 온듯 하지만 그 뜻을 잘 이해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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