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동네에 살고 지고…] (41)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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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나도 한 포기 곰취이고 싶다
누군가에게 뜯어먹혀 힘을 내줄 풀

-윤후명

한려수도란 이름만 들어도 다도해를 가르는 물길이 눈에 출렁인다. 한산섬이 떠있는 통영 앞바다의 '수국'이라는 작은 섬이 문인들의 발길이 잦은 작가촌으로 지정된 것은 1980년대의 끝이었다.

섬에서 태어나 섬 하나를 가꾸고 싶어했던 한 언론인이 글값 모은 돈으로 버려진 섬 하나를 사서 충무공의 '수국추광모(水國秋光暮)'에서 이름을 딴 것이다.

내가 '민족과 문학'주간을 맡고 있던 91년 여름 소설창작교실을 수국에서 열었다. 8월 9일에서 12일까지 3박4일 일정이었는데 강사진으로 이호철.정연희.유현종.송영.김주영.김용성.김원일.윤후명.이문열 등의 소설가와 평론의 김병익, 시의 황동규 등이 참가해 작은 섬 수국은 마치 한국문단의 임시정부가 들어선 것 같았다. 신문기사도 '스타군단의 총출동'또는 '별들의 전쟁'같은 눈부신 제목을 달고 있었다.

외딴 섬에는 문인들을 위한 선상 카페가 불을 밝히고 있었다. 남쪽 바다의 밤 정취와 함께 문학 이야기를 꽃 피우며 문인과 독자들은 선상 카페에서 바다 바람에 가슴을 달구고 있었다.

새벽 두시쯤 되었을까, 비좁은 잠자리에 아무렇게나 누워 겨우 잠을 청하는 내 머리맡에서 이문열과 윤후명이 맘껏 취해서 들어와 이상한 손짓을 해가며 인생문답을 하고 있었다.

이문열이 곯아떨어지자 윤후명은 나를 깨웠다. 등산은 내가 앞서지만 나는 주인이고 그는 손님이니 졸리지만 그의 이야기를 들어주어야 했다. 골자인즉 어느 재벌가의 규수와 사랑을 하게 되었는데 어떡하면 좋겠느냐는 것이었다. 글쎄 상담을 하는 건지 자랑을 하는 건지 나는 대충 축하한다는 대답을 해주었다.

이튿날 수강생들과 오전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었는데 천막을 쳐들고 이문열이 불쑥 얼굴을 내밀었다. "이선생님! 오늘 오후 2시에 윤후명씨 결혼식이 있다고 광고해주세요"라고 한마디 던지고 간다. 수강생들이 그 말을 함께 들은 터라 나는 복창을 하면서도 '아닌 밤중에 웬 홍두깨?'하고 속으로 웃었다.

오전 수업이 끝나고 본부에 와서야 강사로 온 신랑 윤후명군과 수강생인 신부 허영숙양의 결혼식이 준비되고 있음을 알았다. 정연희는 수국을 온통 헤매며 산유화를 꺾어 신부의 부케를 만들고 있었다.

이호철의 주례로 결혼식은 거행되었다. 나는 사회를 보았고 유현종이 축가도 불렀다. 이른바 문단의 임시정부 요인들이 하객으로 참석했으니 어느 결혼식보다 화려했다.

설마하고 뒤늦게 달려온 몇몇 수강생들은 세기적 결혼식을 못보았노라고 발을 동동 굴렀다. 신랑.신부는 그 길로 국토 남단을 가로지르는 신혼여행을 떠났고 서울의 여성지들은 다투어 '눈물의 수국결혼식'을 지면 가득 메웠다.

46년 강릉에서 태어나 67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시 '빙하의 새'가 당선돼 70년대 뛰어난 시를 쓰던 윤상규는 79년 다시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소설로 등단하면서 윤후명이란 이름을 쓰기 시작한다.

지금 서울 평창동에 소슬한 둥지를 틀고 남부러운 '곰취의 사랑'을 하면서 소설대학을 운영, 올해에도 신춘문예에 넷이나 내보냈으니 수국의 그 산유화 약효 한번 세구나.

이근배 <시인.한국시인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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