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리우드 여권운동 거센 바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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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상원이 할리우드보다 훨씬 진보적이다."

할리우드 '성벽(性壁)'에 대한 도전이 갈수록 세차다. 1985년 성.민족 등 각종 차별 철폐를 목표로 설립된 게릴라걸스(www.guerrilla girls.com)가 이같은 슬로건을 걸고 이달 내내 할리우드의 여성 차별에 반대하는 캠페인을 벌인다.


게릴라 걸스의 할리우드 남녀 차별 철폐 포스터.

할리우드 곳곳에 입간판.포스터 등을 부착해 미국 영화계의 보수적 성의식을 꼬집는 한편 오는 23일 아카데미 시상식이 열리는 코닥극장 화장실 등에 관련 스티커를 붙여 공감대를 끌어낼 계획이다.

무엇보다 할리우드의 남녀 역할 분담 비판이 눈길을 끈다. 이들에 따르면 지난해 흥행작 1백편 가운데 여성 감독 작품은 4%에 그친 반면 미국 상원의 여성 의원 비율은 14%라는 것이다.

다른 어떤 분야보다 개방적이어야 할 할리우드가 오히려 의회보다 보수적이라는 주장이다. 정치적으로 폐쇄적인 아프가니스탄에서도 여성 장관이 6%에 이른다고 꼬집었다.

상황이 열악하기는 타 분야도 마찬가지다. 게릴라걸스가 샌디에이고 대에 의뢰해 조사한 바에 따르면 흥행작 1백편에서 여성 작가.촬영감독이 참여한 작품은 각각 8%와 1%에 머물렀다.

또 여성 편집자의 손을 거친 작품은 12%에 그쳤다. 인종 차별도 심각해 메이저 영화사 가운데 작품 제작 여부를 결정하는 실력자는 모두 백인 남성이었다

게릴라걸스는 할리우드를 '소년 모임(Boy's Club)'으로 정의했다. 그리고 할리우드가 21세기에 걸맞은 여성의 역할을 찾아야 할 것이라고 촉구했다. 지난해 핼리 베리가 흑인 여성 최초로 오스카 여우주연상을 탔지만 그건 빙산의 일각이라는 것.

그들은 현재 '프리다'로 올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후보에 오른 멕시코 태생의 셀마 헤이예크를 주시하고 있다. 헤이예크는 최근 공개석상에서 "할리우드의 심각한 인종 편견 탓에 배우 생활 포기를 고려한 적도 있다"고 말했다.

아카데미는 올해 '여성의 약진'이 눈에 띈다. 작품상 후보에 오른 '디 아워스''시카고'의 주연이 여성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게릴라걸스에 따르면 할리우드가 갈 길은 아직 멀다. 그 입장에 동의하든 안하든 뭔가 숙제가 있는 건 부담스러운 일이다.

박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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