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터·모스트」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선거 때마다 생각나는 영어들이 있다. 「faddler」란 말은 선거인들을 술로 녹아 떨어뜨리는 역할을 맡은 사람을 뜻했다. 그는 늘 호주머니에 잔돈을 잔뜩 넣고 만나는 사람마다 닥치는 대로 술대접을 했다.
18∼19세기의 영국에서 선거일이 다가오면 흔히 정체 모를 사람이 슬며시 찾아와 문틈으로 금화를 던지면서 아무개 족인데 잘 부탁한다는 말을 남기고 사라지곤 했다. 이런 사람을 「월 세계의 사람」(man on the moon)이라 했다.
실상 그 당시 영국 선거에 있어서는 각 당의 선거 사무장은 선거인들을 매수하는 일밖에는 할 게 없었다. 그래서 그는 속칭 「매수 사무장」(bribe-agent)이라고도 했다.
반대파의 투표인들을 술집에 가둬 놓고 술이 곤드레가 되도록 마시게 하여 투표를 못하게 하는 수도 있었다. 선거인들의 유괴·감금은 흔히 있었다. 이런 일도 있었다. 「버위크」의 선거인들은 바다를 건너 「런던」에까지 와서 투표하는 것이었는데 매수된 뱃사공은 뱃머리를 돌려 「노르웨이」에 상륙시켜 투표를 못하게 했던 것이다.
이런 일을 모두 선거 사무장이 총지휘했다. 매수가 안될 때에는 협박과 폭력을 썼다. 지주와 소작 계약을 할 때에는 「지주의 명령대로 투표하겠습니다」라는 조건이 붙어 있었다. 이것을 어기면 토지를 뺏기고 쫓겨났다. 「옥스퍼드」에서는 학장의 마음대로 기표하지 않은 하숙집 주인에게 앞으로의 학생 하숙업을 금지시켰다.
「미스터·모스트」 (Mr.Most)라는 말도 있었다. 제일 비싼 값으로 표를 사주는 입후보자를 뜻했다. 「코크런」이 「토리」당의 「브래드쇼」와 경합한 때의 얘기다. 「브래드쇼」는한 표에 5「기니」씩으로 매수했다.
두말할 것도 없이 그는 당선됐다. 그러자 「코크런」은 앞으로는 자기에게 투표해준 사람에게 10「기니」씩 주겠다고 광고했다. 그 다음 번 선거에서 얼마에 사겠다는 약속도 않던「코크런」이 당선된 것은 물론이었다.
그러나 그는 돈 한 푼 치르지 않았다. 화가 나서 덤벼드는 선거민에게 그는 『나는 매수에는 절대 반대한다는 주의입니다』라고만 답변했다.
이렇게 해서 당선되어도 조금도 창피하다는 생각은 없었다. 매수되는 게 나쁘지 매수한다는 것은 『귀족답고 신사적이며 존경할 만한 죄』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유령 투표」도 이때부터 있던 말이다.
이런 영어들은 이제는 들을 수 없게 됐다. 이런 말들이 자취를 감추는데 꼭, 1백년이 걸렸다. 이대로는 나라의 모든 게 부패될 거라고 깨달은 l883년부터의 일이다. 우리도 뭣인가 깨달아야 할 때가 된 게 아닐까?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