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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리에 몸통 휘둘린 한국과 미국의 야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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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정경민
뉴욕 특파원

요즘 미국 공화당 지도부의 정치 지능은 조류에 가까워 보인다. 대선배 뉴트 깅그리치 전 하원의장이 1995~96년 21일간 연방정부 폐쇄를 주도했다가 패가망신한 교훈을 그새 그렇게 새카맣게 까먹었단 말인가. 깅그리치는 존 베이너 현 하원의장의 멘토이기도 했다. 스승의 전철을 어찌 그리 한 치 오차도 없이 밟는지! 상식적으론 도무지 납득이 가지 않는 3류 코미디의 이면엔 미국의 뒤틀린 정치 구조가 놓여 있다.

 요즘 미국의 지방색은 한국의 영남과 호남 저리 가라다. 유색인종이 많은 해안가 대도시는 민주당, 백인이 대다수인 내륙은 공화당 아성(牙城)으로 확연히 갈렸다. 자기편끼리 똘똘 뭉치다 보면 늘 극단의 꼬리가 몸통을 흔들기 마련이다. 중도·실용주의는 설 자리가 없어지고 극단주의가 판친다. 당내 소수인 극우보수 ‘티파티(Tea Party)’에 공화당이 휘둘리고 있는 이유다.

 중앙당 지지율이 연일 곤두박질하는 와중에도 공화당 정치인들이 앞다퉈 골통 행각에 나선 까닭도 여기에 있다. 티파티 본거지인 텍사스주 초선 상원의원 테드 크루즈가 하루아침에 차기 공화당 대선주자로 뜬 것만 봐도 그렇다. 그가 한 일이라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건강보험개혁안을 저지하겠다며 21시간19분 동안 동화책까지 읽어가며 벌인 ‘썰렁’ 개그뿐이었다.

 정치판이 이 지경이 된 데는 오바마 책임도 크다. 2008년 대선에서 압승한 그는 승리에 도취했다. 월가 은행가들을 불러다 ‘살찐 고양이’라며 싸잡아 매도했다. ‘편가르기’ 극약처방도 마다하지 않았다. ‘98% 대 2%’ 구호는 부자의 ‘역린(逆鱗)’을 건드렸다. 2010년 중간선거에서 티파티가 돌풍을 일으키며 88년 만에 최악의 패배를 민주당과 오바마에게 안긴 건 우연이 아니다.

 그렇지만 어쩌면 티파티 역시 제 꾀에 넘어가고 있는지 모른다. 미국에선 총선거는 몰라도 대선의 열쇠는 10개 안팎의 ‘스윙스테이트(swing state)’라 불리는 경합주가 쥐고 있다. 어렵사리 만든 협상 테이블을 늘 걷어차기만 하는 티파티의 몽니에 경합주의 민심은 벌써 진저리를 치고 있다. 티파티가 내세우는 극단주의에 공화당이 더 가까이 다가갈수록 경합주 민심과는 점점 멀어질 수밖에 없다.

 한국의 민주당은 어쩐지 미국 공화당과 닮았다. 둘 다 지난 대선에서 손에 잡힐 듯 말 듯 했던 대어(大魚)를 눈앞에서 놓쳤다. 공화당이 티파티에 발목 잡혔듯 민주당은 통합진보당이 쳐놓은 덫에 걸렸다. 뼈아픈 패배를 당하고도 거기서 교훈을 얻지 못하는 아둔함 역시 닮은꼴 아닐까. 한국에선 이제 충청권 인구가 호남권을 앞질렀다고 한다. 충청·강원도가 우리나라의 스윙스테이트가 될 거란 얘기다. 몸통이 꼬리에 휘둘릴 때 스윙스테이트 민심은 어디로 향했는지 한국 민주당이나 미국 공화당이나 곰곰이 곱씹어볼 일이다.

정경민 뉴욕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