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에 멍들고 중국에 치이고 '게임 한국' 게임 오버?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경제 01면

#올해 5월, 넷마블은 온라인게임(MMORPG)을 개발하는 라다스튜디오를 청산했다. 캐주얼 모바일게임 위주로 사업을 운영하던 넷마블이 대형 온라인게임 개발을 위해 법인을 설립한 지 5개월 만에 손을 든 것이다. 당시 넷마블 측은 “온라인게임 개발 기간이 오래 걸리고 비용이 증가하는 문제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1세대 게임 개발사로 분류되는 블루사이드는 올해로 5년째 ‘킹덤언더파이어2’를 개발 중이다. PC와 비디오게임으로 전 세계 200만 장 판매량을 기록한 실시간전략시뮬레이션(RTS) 게임 ‘킹덤언더파이어’의 후속작인데, 충분한 개발비를 확보하지 못한 탓에 일정이 계속 지연되고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블루사이드뿐만 아니라 국내 게임업계는 현재 총체적 난국”이라고 말했다.

 국내 콘텐트 수출의 80%를 차지하는 게임산업이 ‘고사 위기’에 몰렸다. 박근혜 대통령이 취임 직후 창조 경제를 이끌 ‘5대 글로벌 킬러 콘텐트’ 중 하나로 게임을 꼽았지만, 국회에선 게임산업을 규제하는 법안이 잇따라 나오고 있다. 한 국내 게임업체 임원은 “국내와는 반대로 ‘텐센트’를 비롯한 중국 업체들은 수백 개씩 게임을 출시하고 있다”며 “이대로 가다간 2~3년 내에 온라인은 물론 모바일 게임시장 역시 중국 업체들에 모두 내주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리그오브레전드(LOL) 대표 캐릭터 애시(Ashe). 미국에서 개발한 LOL을 중국 텐센트가 2011년 인수했다.▷여기를 누르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술·마약·도박 함께 4대 중독 몰려

 실제로 연초에 발의된 ‘인터넷게임 중독 예방에 관한 법률’과 ‘인터넷게임 중독 치유 지원에 관한 법률’엔 ▶셧다운제는 확대하고 ▶게임 중독 치유 기금으로 매출의 1%를 내놓는다는 내용이 담겼다. 대표적 사행성 산업인 경마나 도박업체가 부담하는 비율(0.35%)의 세 배가 넘는다. 여기에 올 4월 새누리당 신의진 의원이 발의한 ‘중독 예방·관리 및 치료를 위한 법률’에는 인터넷게임이 마약·도박·술과 함께 4대 중독 물질로 포함됐다.

규제 탓 개발비 급증, 제작 급감

 이런 규제들은 게임 개발비를 올리는 주요 원인이 되고 있다. 인터넷디지털엔터테인먼트협회에 따르면 2011년부터 시행된 ‘강제적·선택적 셧다운제’를 지키기 위해 게임업체들이 추가로 투자해야 하는 비용은 한 편당 10억~20억원이다. 평균 개발비의 50%에 육박한다. 올해 발의된 법안들까지 시행될 경우 이 비용은 더 늘어날 전망이다. 이렇다 보니 국내 신규 게임물 제작 건수는 2857건(2011년)에서 1444건(2012년)으로 50% 가까이 줄었다. 한 업계 관계자는 “게임 출시까지 드는 비용이 신규 개발사들은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이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많은 국내 게임업체가 중국으로 넘어갔거나 투자를 받고 있다. 텐센트는 국내 신생 게임개발사인 NSE엔터테인먼트에 40억원 규모의 지분 투자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국내 벤처캐피털사 캡스톤파트너스와 500억원 규모의 펀드를 조성해 ‘리로디드 스튜디오’ ‘탑픽’ 등 국내 7개 게임개발사의 지분을 확보했다. 또 다른 중국 게임회사인 샨다게임즈는 미르의전설·라테일 등을 만든 액토즈소프트, 드래곤네스트의 개발사 아이덴티티게임즈 등을 인수했다.

중국, 국내업체 인수해 시장 잠식

 국내 게임의 빈자리는 외국 업체들이 차지했다. 게임물등급위원회에 따르면 국산 게임의 PC방 사용 시간 기준 점유율은 2011년 52%에 육박했지만, 현재는 27%로 거의 반 토막이 났다. 지난해부터 최고 인기인 ‘리그오브레전드(LOL)’ 역시 미국 라이엇게임즈가 개발해 중국 텐센트가 운영하는 게임이다. 김성곤 인터넷디지털엔터테인먼트협회 사무국장은 “자생적으로 자라나 국내 콘텐트 수출의 근간을 이루던 게임산업이 정부 지원을 듬뿍 받는 중국 업체에 밀리고 있다”며 “규제 일변도인 정부와 정치권 때문에 게임업계에 종사하는 9만5000여 명의 일자리가 위태롭다”고 토로했다.

 업계에서는 게임산업의 발전을 무조건적으로 가로막는 규제 대신 실효성 있는 대안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한양대 황성기(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국내 게임업체들이 그동안 게임 중독에 대해 미온적으로 대처한 측면이 있다”며 “부모가 요청하면 PC·스마트폰 게임 시간을 통합해 관리하는 등의 방안을 통신업계 등과 함께 도입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황 교수는 “매출의 1%를 기금으로 내는 등의 규제는 해외에 서버를 둔 중국 업체에 역차별을 당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고란·조혜경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