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 신났던 LG, 서글픈 가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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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LG 주장 이병규(왼쪽)를 비롯한 선수단이 20일 두산과의 플레이오프 4차전에서 져 한국시리즈 진출이 좌절된 뒤 팬들에게 인사를 하고 있다. [뉴시스]

10월 20일. LG의 신바람이 멎었다.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었던 플레이오프 4차전에서 두산에 1-5로 져 1승3패로 한국시리즈 진출에 실패했다. LG 선수들은 경기 후 썰물처럼 더그아웃을 빠져나갔다.

 구석에서 포수 윤요섭(31)은 울었다. 몸까지 떨었다. 김진욱 두산 감독이 인사를 하러 왔는데 그 기척을 느끼지 못할 정도였다. 그 순간 아직 자리를 뜨지 못한 몇몇 LG 팬들도 쏟아지는 눈물을 참지 못했다. 11년 만에 맞은 포스트시즌이 허무하게 끝난 서글픈 가을밤이었다.

 “이렇게 많이 운 것은 태어나서 처음”이라는 윤요섭은 “형들이 잘해줬는데 밑에서 받침이 못돼준 것 같아 너무 미안했다. 잘하고 졌다면 인정하겠지만 못해서 플레이오프를 망쳤다”고 말했다.

 김기태 LG 감독은 경기 뒤 선수들을 모았다. 여간해선 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는 그도 감정이 북받쳐 올랐다. “다들 고생했다. 우리 선수들이 정말 고맙고 자랑스럽다.” 윤요섭은 또 울었다. 내야수 손주인과 외국인 투수 리즈 등도 눈물이 고였다.

 LG는 올 시즌 정말 신나게 야구를 했다. 포기하지 않는 근성, 똘똘 뭉친 믿음의 야구로 정규시즌 2위에 올랐다. 2003년부터 2012년까지 10년간 이어진 침체기가 끝났다. 숨죽이고 있던 LG 팬들이 다시 야구장으로 몰려들었다.

  윤요섭이 리드한 LG의 투수진은 플레이오프에서 2.12의 평균자책점으로 두산 타선을 잘 막았다. 타자들도 타율 0.272의 활발한 공격력을 보여줬다. 윤요섭은 타율 0.250(8타수 2안타), 2타점으로 제 몫을 다했다. 2-0으로 승리한 2차전 결승타가 그의 방망이에서 나왔다.

 문제는 생각지도 않은 곳에서 터졌다. 실책과 주루사, 번트 실패 등이 중요한 순간마다 나왔다. 주워담을 수 없는 치명적인 실수였다. LG 선수들은 포스트시즌도 정규시즌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알게 모르게 부담을 느꼈다. 의욕이 넘쳐 들뜨거나 덤빈 선수도 있었다.

 김정준 SBS ESPN 해설위원은 LG가 흔들린 이유로 경험 부족을 지적하며 “선수들이 마음만 급하고 몸이 안 따라줬다. 주루사가 자주 나온 것도 경기를 풀어나가는 요령이 부족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LG 구단 홈페이지 게시판에는 “스스로 무너진 경기였다. 아쉬움이 크지만 선수단 덕분에 올 한 해 행복했다”는 글이 줄지어 올라왔다. “올해의 좌절이 약이 될 수 있도록 오기를 부탁한다”는 당부도 있었다.

 LG는 11년 만의 가을야구를 통해 많은 걸 깨달았다. 수비와 베이스 러닝 등 기본기를 꼼꼼하게 다져야 단기전의 강자가 될 수 있다는 걸 뼈저리게 느꼈다. LG를 누른 두산이나 최근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한 삼성과 SK는 빈틈이 거의 없는 팀이다. “LG가 더 좋은 성적을 내기 위해선 거포 보강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윤요섭은 같이 울었던 후배들을 다독이며 “오늘 흘린 눈물을 잊지 말고 내년에 더 잘하자”고 당부했다. LG는 실패를 밑거름 삼아 2013시즌보다 강한 2014시즌 신바람을 준비한다.

김우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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