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드테크 된 골드테크 … 종로 귀금속상가도 썰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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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이 체면을 구기고 있다. 금값이 계속 하락할 것이란 전망이 나오면서 16일 서울 종로의 귀금속상가는 손님이 없어 한산했다. 일부 상인은 아예 자리를 비우기까지 했다. 이날 순금 한 돈(3.75g)은 18만 2000원 정도면 살 수 있었다. 2년 전보다 30% 이상 싼 가격이다. 사진은 종로 귀금속상점에 진열된 골드바. [뉴시스]

16일 오후 서울 종로 귀금속상가 거리. 썰렁한 분위기가 역력했다. ‘임대문의 010-xxxx’라고 적힌 상점도 눈에 띄었다. 바로 전날 종로 귀금속상가에서 금 1돈(3.75g) 시세(매입가 기준)는 18만원까지 떨어졌다. 한국금거래소에 따르면 금 1돈 가격이 18만원까지 떨어진 것은 2011년 5월 11일(17만9000원) 이후 처음이다. 2011년 9월(29만9000원)과 비교해서는 35% 넘게 빠졌다. 은의 경우 고점 대비 51%가 떨어졌다.

 한국인들의 대표적인 돌잔치 선물로 사랑받던 금 1돈이 2년여 만에 18만원대로 돌아왔지만 고객은 오히려 줄고 있다. 상인 송호섭(75)씨는 “올봄만 해도 금값이 쌀 때 사두겠다며 문의하던 고객들마저 최근 발길이 뚝 끊겼다”고 전했다.

골드뱅킹 신규 가입 3분의 1 토막

 변함없는 금 사랑을 보여줬던 국내 자산가들조차 이제 금 하락을 대세로 보면서 금을 외면하고 있다. 신한은행이 취급하는 금 실물매입계좌인 ‘골드리슈’의 신규 가입자 수는 올봄까지는 매달 2000명을 넘었지만 7월 이후에는 700∼800명에 그치고 있다. 국민은행 목동 PB센터 공성률 팀장은 “연초에는 금값이 그냥 떨어지는 수준이었고, 종합과세 이슈도 있어 골드바를 저가 매수하려는 사람들이 있었다”며 “최근에는 금값 하락을 대세로 보는 견해가 늘면서 금 투자가 점점 시들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글로벌 금융시장도 내년 금값을 하락 쪽에 베팅하고 있다. 지난해 10월 트로이온스(31.1035g)당 1790달러를 기점으로 날개 없는 추락을 한 금값은 올 6월 28일 뉴욕시장에서 장중 1200달러가 붕괴되기도 했다. 이후 시리아 사태 등의 여파로 안전자산 선호 심리가 일면서 8월 말 1400달러대까지 반등했지만 다시 하락세로 돌아섰다. 15일에는 1273달러를 기록했다.

 향후 전망도 비관론이 우세하다. 미국의 양적완화 축소가 시작되면 달러화 가치와 금리가 오르면서 실물 자산인 금의 매력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소시에테제네랄과 크레디트스위스는 내년 3분기 금값을 각각 1100달러와 1150달러로 보고 있다. 지금보다 100달러 이상 떨어진다는 의미다.

온스당 1000달러 붕괴 비관론도

이런 약세 예상 속에 글로벌 주요 상장지수펀드(ETF)의 금 보유량은 지난해 12월 20일(2633t)을 고점으로 계속 줄어 최근에는 1908만t까지 떨어졌다. 국제금융센터 오정석 연구원은 “올여름 금값이 반등하는 상황에서도 금ETF로의 자금 유입은 거의 없었다”면서 “금 투자 심리가 좀처럼 회복되지 않고 있다”고 분석했다.

영국의 귀금속 전문 컨설팅업체인 GFMS의 최고경영자 폴 워커는 14일 도쿄에서 열린 강연에서 “황금 시대가 끝나고 있다”며 내년 중반에 금값이 1000달러 밑으로 떨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선진국들의 낮은 물가상승률을 감안하면 (인플레이션 회피 수단으로서의) 금의 매력은 떨어지고 있다”며 “내년에 미국 금리가 본격 상승하면 금값 하락 속도가 빨라지고, 금 소비 1·2위국인 인도와 중국 투자가들까지 금 매도에 나서면 1000달러가 붕괴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하지만 금값 약세를 점치는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금값이 급락할 것으로 보는 사람은 많지 않다. 금의 공급이 제한적인 데다 아시아의 견고한 수요 때문이다. 게다가 금값 하락 시나리오는 금융시장이 정상적으로 작동한다는 가정에서만 유효하다. 미국의 부채한도 협상이나 주요국의 재정 이슈, 신흥국 경제 불안 등 금융시장의 위험요인은 곳곳에 깔려 있다. 우리투자증권 강유진 연구원은 “금값은 당분간 약세가 불가피하겠지만 금융시장의 불확실성이 고조되면 안전자산인 금값이 반짝 상승하는 베어마켓 랠리가 펼쳐질 수도 있다”고 예상했다.

윤창희·이지상·홍상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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