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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셧다운 정국, 70대 정객 해결사 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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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해리 리드 민주당 상원 원내대표(왼쪽 사진)와 미치 매코널 공화당 상원 원내대표가 14일(현지시간) 미 워싱턴 의사당에서 회동을 마친 뒤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미국이 디폴트(채무불이행) 위기에 직면한 가운데 두 노장이 협상의 전면에 나서 눈길을 끌고 있다. [워싱턴 AP=뉴시스]

“이젠 해리와 미치의 쇼가 펼쳐질 시간이다.”

 지난 12일(현지시간) 미국의 정치전문지 폴리티코는 머리기사에서 이렇게 전했다. 17년 만의 연방정부 셧다운(부분 폐쇄) 사태가 3주째 접어들고, 사상 초유의 디폴트(채무 불이행) 위기에 몰린 미국이 70대의 노(老)정객 두 명에게 마지막 희망을 걸고 있다. 해리 리드(73·네바다) 민주당 상원 원내대표와 미치 매코널(71·캔터키) 공화당 상원 원내대표가 구원투수로 나섰기 때문이다.

오바마도 의회와 담판 미루며 기대감

 민주·공화 양당의 원로인 두 사람은 당내 소장 강경파들이 강 대 강 대결을 주도하자 멀찌감치 물러서 있었다. 하지만 제이컵 루 재무장관이 미국 경제의 부도 시한으로 정한 17일이 목전에 이르자 마침내 협상의 전면에 나섰다. 셧다운 사태가 터진 뒤 12일 처음 시동을 건 두 사람의 만남은 사흘 만인 14일 꽉 막힌 미 의회정치에 기대감을 심어주기에 이르렀다.

 이날 오전 회동을 마친 두 사람은 상원 전체회의에서 “대단한 진전을 이뤘다”(리드), “어제에 이어 오늘도 아주 좋은 하루였다”(매코널)는 청신호를 보냈다. 두 사람의 협상이 진전을 보이자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오후에 백악관에서 열릴 예정이던 의회 지도자들과의 담판을 연기했다. 백악관은 성명을 내 “상원 지도부 간 협상에서 중요한 진척이 있었고, 이들이 시간이 좀 더 필요하다고 해 백악관 회동을 연기했다”고 발표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기자들과 만나 “상원 쪽에서 뭔가 진전이 있는 것 같다”고도 말했다.

 두 사람의 협상 내용을 잘 아는 소식통들에 따르면 역시 ‘묵은 생강이 맵다’는 속담처럼 관록의 정치는 달랐다. 리드 대표는 오바마 대통령의 대선 공약인 ‘오바마케어’ 가운데 의료장비에 대한 과세를 2년 정도 늦추고 오바마케어 수혜자에 대한 소득증명을 강화하자는 공화당 주장을 받아들일 수 있다는 입장을 보였다. 대신 매코널 대표는 연방정부 셧다운을 끝내기 위해 내년 1월 중순까지 우선 임시 예산을 집행할 수 있게 해주고, 연방정부 채무한도를 내년까지 인상해주는 방안을 거론했다고 한다. 이런 협상이 가능한 건 두 사람이 40년 가까운 정치 경력을 토대로 의회정치의 본질이 내 주장만 내세우는 게 아니라 서로 조금씩 양보하는 타협에 있음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이라고 블룸버그통신은 전했다.

7년여 원내총무·대표로 미운 정 고운 정

 리드 대표와 매코널 대표는 7년이 넘도록 소속당의 원내총무·원내대표로 맞상대를 하면서 미운 정 고운 정이 든 사이다. 둘도 정치 초년병 시절엔 소속 당의 이해에 민감한 강경론자들이었다. 특히 오바마 대통령이 취임하면서 서로 얼굴을 붉힐 때도 많았다. 매코널 대표는 2010년 당 행사에서 “오바마를 단임 대통령으로 만들자”고 역설해 민주당의 공분을 샀다. 반면 리드 대표는 2014년 상원의원 선거를 앞두고 매코널 대표에 맞설 민주당 후보의 선거자금을 모아줘 둘의 사이가 틀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사상 초유의 국가 부도 위기 앞에서 두 사람은 의회정치를 복원할 협상장에 기꺼이 나섰다.

 리드 대표는 “매코널과 나는 오랜 기간 같은 직책으로 만난 사이”라며 “나는 그를 알고, 그는 나를 안다. 우리는 모든 일에 의견이 같지는 않지만 서로 이해하는 사이”라고 말했다. 두 사람이 미 의회정치의 구원투수로 나선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08년 금융위기 속에서 월가의 구조조정안을 놓고 민주당과 공화당이 대치했을 당시 돌파구를 마련했으며, 지난해 재정절벽 협상도 이끌었다.

2008년 월가 구조조정 때도 함께 활약

 물론 민주·공화 양당의 상원 원내대표인 두 사람이 극적인 합의를 이뤄내더라도 그게 끝은 아니다. 상원과 달리 공화당 강경파들이 즐비한 하원에서 합의안을 최종적으로 통과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두 사람의 협상 결과는 이르면 15일 뚜껑이 열릴 예정이다. 워싱턴 정가는 지금 70대 두 노정객의 ‘수완’에 마지막 기대를 걸고 있다.

  워싱턴=박승희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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