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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금 하나 부으실래요 미래의 나를 위한 나눔과 봉사라는 통장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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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자원봉사로 사회공헌을 하는 사람이 주변에 여럿 보인다. 하지만 내심 “자원봉사는 돈과 시간, 체력이 남는 사람들이 하는 것”이라며 “난 살기가 빠듯해서 그런 것 못해”라는 사람도 적지 않을 것이다.

 자원봉사를 남의 일로 여겼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지난봄 지방공무원 교육기관인 향부숙 현장학습팀과 함께 일본 가나자와(金澤)시를 찾아 모리 시게루(森茂) 가나자와자원봉사대학교 이사장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생각을 바꿀 수 있었다. 가나자와대 화공과 교수 출신인 그는 “자원봉사도 전문적으로 배워야 효율적으로 할 수 있다”며 25주 과정으로 개념과 자세, 요령을 가르치는 평생교육기관인 이 대학을 운영하고 있다. 문화(미술관 등 문화시설 활동), 마을 만들기(주민자치), 복지건강(고령자 말벗 해주기), 복지실기(수화·점자), 역사유산(지역 문화재 안내), 국제교류(다문화 공생사회 추구), 지역·환경(환경 지킴이), 관광(지역 무료가이드) 등 개설 분야가 8개나 됐다.

 무엇보다 기억에 남는 게 “자원봉사는 베푸는 게 아니라 따지고 보면 상당히 이기적인 행동”이라는 모리 이사장의 철학이었다. 그는 “누구나 결국 노인이 되며, 운이 나쁘면 사고도 당할 수 있다”며 “내가 나중에 어려움에 처했을 때 다른 누군가가 도와주는 공생의 사회를 만들기 위해 자원봉사를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자원봉사는 우리 사회를 서로 돕고 사는 공동체로 정상화시키는 수단”이라며 “결국 나 자신을 위한 나눔과 봉사의 적금을 드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15일자 일부 신문에 재정위기로 고민이 많을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14일(현지시간) 워싱턴에 있는 비정부기구 마사스 테이블을 방문한 사진이 실렸다. 저소득층 주민들에게 식사를 제공하는 자원봉사 단체라고 한다. 이 사진이야말로 자원봉사가 단순히 남을 돕는 자선활동을 넘어서 주민끼리 서로 돕는 공동체를 만들기 위한 사회 활동임을 국가 지도자가 몸소 웅변하는 장면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선거철이 아닌데도 지도자가 자원봉사자들을 격려하고 동참하는 모습이야말로 나라의 품격을 높이는 게 아닐까. 한국에서도 이런 모습을 자주 보고 싶다.

 20일 오전 11시~오후 4시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위·아·자 장터가 열린다. 빈곤아동을 지원하는 위스타트, 기증물품을 팔아 어려운 이웃을 돕는 아름다운가게, 그리고 자원봉사의 세 가지 활동을 결합한 행사다. 장터 자체도 수많은 자원봉사자의 손으로 운영된다. 매년 이런 행사를 볼 수 있는 것만으로도 우리 사회의 건전성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자원봉사는 이기적”이라는 모리 이사장 발언의 뜻을 되새기며 그날 광장에 가야겠다.

채인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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