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바수술 이야기]⑭ 병은 어떻게 생기는가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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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명근 건국대병원 흉부외과 교수

첫 번째 심장 이식 수술이 끝난 후, 나는 다시 대동맥 근부의 움직임에 대한 연구에 몰두했다.

미국에서 대동맥 근부의 움직임에 대한 결정적인 힌트를 얻었지만, 새로운 이론을 확립하고 그것을 임상에 적용할 수 있도록 정리해내는 작업은 또 다른 일이었다.

몇 달간 나는 대동맥 근부에 관한 논문들에 파묻혀 지냈지만 움직이는 대동맥근부의 수학적 움직임에 관한 논문은 거의 없었다. 대동맥근부의 움직임과 역학적인 관계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내가 직접 돼지의 심장을 갖고 실험하며 가설을 규명해 나갈 수 밖에 없었다.

우여곡절 끝에 대동맥근부의 각 부분은 일정한 모양이 아니라 0,01초의 짧은 시간 차이로 계속 움직이며 밑면과 윗면의 직경과 높이가 계속 변하는 특성을 가졌다는 놀라운 비밀을 알게 됐다.

일단 발견한 내용을 학회에 먼저 발표할 것인가를 두고 꽤 고민했다. 대동맥 근부의 움직임을 파악해낸 것은 분명히 획기적인 일이었지만, 중요한 것은 이것을 어떻게 임상에 적용해 새로운 치료를 만드느냐 였다.

나는 들뜬 마음을 잠시 진정시키고, 더 연구에 박차를 가해서 새로운 수술법을 개발하고, 한꺼번에 발표하기로 결정했다.(이때 발견한 대동맥근부 움직임의 비밀은 최근에 출간된 'Song’s Innovative Aortic Root and Valve Reconstruction' 책 4~5장에 자세히 기록돼 있다.)

대동맥 근부 질환에 대한 연구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판막 질환이 어떤 기전을 통해 어떻게 생겨나는지, 그 과정에서 어떤 구조물들이 어떻게 망가져 가는지, 변형된 판막에서의 혈류 역학은 어떻게 달라지는지에 대한 연구는 생각처럼 그리 녹록하지 않았다.

부검이나 심장 이식으로 떼어낸 심장에서 변성의 특징과 정상적인 심장과 비교하는 연구가 수십 회 계속된 후에야 변형된 심장에서는 혈류에 어떤 변화가 생기는지, 한 번 변형되고 나면 판막이나 근부에 어떤 변화가 추가적으로 생겨나는지에 대한 윤곽이 잡혔다.

다시 말하면 문제의 시작이 판막엽이든 근부든, 결국에는 양쪽에 서로 영향을 주면서 계속 약화된다는 중요한 사실을 알게 됐다. 그때까지의 판막 치료는 판막엽의 기능만을 회복하는 데 중점을 맞추고 있었기 때문에 판막치환술이 ‘완치’가 아닌 ‘근치’에 머물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또한 마르팡씨 질환에서 대동맥근부가 마늘뿌리처럼 늘어나는 이유는 이완기에서 역학적으로 상반된 힘이 대동맥근부벽에 적용되기 때문이라는 사실도 처음으로 알게 됐다. 판막재건수술의 기초이론이 정립되는 계기가 되었다. 이 정도면 기초 연구는 마무리 됐다 싶었던 때가 1993년 2월경이었다. 이제 대동맥 판막 질환을 고치는 일은 가능하게 되리라는 확신이 섰다.

그러나 새로운 치료법을 개발해내는 것은 대동맥근부의 움직임이나 근부질환의 발생기전을 알아내는 것과는 또 다른 도전이었다. 뭔가 해결했다고, 끝에 가까워졌다고 생각할 때마다, 그것은 또 다른 시작일 뿐이었다.

새로운 치료법의 성공을 위해서는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정확한 수술법을 개발해야 했다. 그렇기 때문에 임상실험부터 시작해서 수술에 필요한 재료 제작까지, 수많은 언덕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당시에는 그걸 몰랐다. 나는 꿈이 현실에 가까워졌다는 희망에만 가득 차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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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심교 기자 simkyo@joongang.co.kr <저작권자 ⓒ 중앙일보헬스미디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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