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형사 소송법의 개정 구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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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대법원은 현행 민·형사 소송법을 개정하기로 하고, 널리 검찰과 각급 법원 및 학계의 의견을 모으고 있는 중이라 한다.
대법원의 실무진에 의하면 그 개정 방향은 ①형사 소송법에서 심 급마다 구속 기간을 제한하고 있는 규정을 고쳐 사형·무기 등의 중요 범죄에 대해서는 구속 기간 제한을 없애는 방향과 ②민사 소송의 심리를 빨리 하기 위해 재판부의 직권주의를 강화하는 방향 ③대법원의 심리 건수를 줄이기 위하여 민사 소송의 단독 사건에 있어서는 최종심을 고등 법원으로 하는 방향 등을 논의하고 있다 한다.
사법 제도 개선 심의 위원회도 그 동안 상고심의 사건 폭주를 덜기 위한 상고 사건의 제한이며 민사 소송의 지연 방지책 강구 및 형사 소송의 개선 등을 몇 차례 논의해온 바 있었던 것이므로 이제 그 안이 상당히 성숙된 것으로 보인다. 사법 제도 개선 심의 위원회의 구성원의 임기가 끝나 위원의 교체가 있을 지금 이 문제를 놓고 각계의 의견을 참작할 것이라 한 것은 뒤늦은 감이 있으나 다행한 일이라 하겠다.
우리는 대법원이 사건에 대한 신중한 검토를 위하여 상고 사건을 줄이려고 하는 데에는 원칙적으로 찬성한다. 헌법상으로 상고 사건을 제한하는 것은 국민의 대법원의 재판을 받을 권리를 침해하는 일이 될지는 모르나, 현재의 대법원의 업무량은 살인적이기에 불가피한 현실이라고 할 것이다. 다만 문제는 민사 소송에 있어 지방 법원의 단독 심 관할 사건은 무조건 상고할 수 없게 하려는 것은 소가에만 의한 제한이기에 찬성할 수 없다. 헌법 위반이나 법률 위반·판례 위반 사건은 소가의 다과를 막론하고 상고의 길이 열려야할 것이다.
또 민사 소송에 있어서 직권주의를 채택하려는 취지도 찬성할 수 있다. 민사 소송 사건 심리에서 당사자들의 고의적이거나 무성의에 의한 연기 신청이 많아 심리가 늦어지는 일이 많은데 직권주의를 강화하여 사전 준비를 명령할 수 있게 하는 것은 좋은 방안이라고 생각한다. 민사 소송이 당사자주의나 불고불리의 원칙을 고집하여 소송이 지연되는 경우 승소 판결을 받은 원고의 법익은 가치가 없어지게 되는 일이 많기에 소송의 지연을 방지하기 위한 제도가 아쉽기 때문이다.
그러나 형사 소송에 있어 인신 구속 기간을 2, 3심에서 완화하려는데 대하여서는 좀처럼 찬성할 수 없는 대목이다. 인신 구속 기간을 2개월로 하고 심 급마다 두 차례까지 갱신할 수 있게 한 현 제도는 불구속 심리가 원칙인 형사 소송에서·구속 심리를 가능한 한 줄이자는 데 목적이 있고, 인신의 부당한 구속에서 피의자를 보호하자는 데 목적이 있다.
대법원 당국자에 의하면 현 제도는 중대 사건 때 구속 기간에 얽매어 충분한 심리를 못한 채 판결을 내림으로써 피고인의 인권을 유린하는 사례가 많다고 하는데 이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의문이 있는 경우에는 무죄의 추정을 하고, 증거가 불충분한 경우에는 무죄를 선고해야 하는 법원이 유죄가 의심스러운 채 유죄 판결을 거듭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들리는 바에 의하면 법원에서는 녹음기 등 현대 장비가 있어도 이를 이용하지 않고 있고, 집중 심리를 하고 싶어도 법정이 없어 못하는 실정이라 한다. 소송법의 개정 전에라도 법원은 기일 지정을 주 단위로 할 것이 아니라 일 단위로 하여 매일 집중 심리하고 판결하는 선진국의 소송 심리 제도를 본받아야 할 것이다.
소송의 지연이 소송 당사자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 법원에도 있다는 책임감을 느껴야 할 것이다. 또 재야의 의견인 형사 사건에 있어서의 당사자 대등 원칙 적용, 경찰 관서에서의 구속 기간 단축, 변호인의 수사 기록 열람 자유 등도 차제에 실현되어야 할 것이다. 우리는 대법원의 소송법 개정 구상에 깊은 관심을 가지며 외국의 입법 예와 국내 각계 각층의 의견을 잘 반영시켜 주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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