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서 ‘별’ 단 취사병 출신 퓨전한식의 달인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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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슐랭가이드 별점 2개를 받은 최초의 한국 레스토랑이 뉴욕에 탄생했다. 외국인들에게 더 유명하다는 서울 강남의 파인다이닝 레스토랑 ‘정식당’의 임정식(35) 셰프가 2년 전 맨해튼 트라이베카에 오픈한 ‘JUNGSIK’이다. 오픈 1년 만인 지난해 가을 별점 1개를 받아 한국인 최초라며 화제를 모은 것도 잠시, 1일 발표된 올해 가이드에서 다시 1년 만에 스스로 기록을 갈아치웠다. 별 2개 이상을 받은 뉴욕의 레스토랑은 총 12개. 한국인이 운영하는 퓨전한식 레스토랑이 세계인의 입맛을 사로잡은 ‘뉴욕 톱12 식당’에 든 것이다.

“뉴욕이란 도시에서 우리가 생존할 수 있다는 걸 확인한 것 같아 기쁩니다. 사실 작년에 2개를 받고 싶었는데 아쉬웠거든요. 올해는 꼭 받아야겠다는 의지로 끊임없이 손님이 만족할 만한 메뉴를 개발하고 서비스를 조금씩 개선해 나간 노력들이 쌓여 좋은 평가를 받은 것 같아요.”

수퍼마켓·레스토랑 등 음식 관련 사업을 하던 친척들의 영향으로 어린 시절부터 다양한 식문화를 남보다 한 발 앞서 접할 수 있었던 그는 군대 취사병으로 복무하며 요리에 푹 빠져 세계 3대 요리학교로 꼽히는 미국 CIA로 유학을 갔다. 졸업 후 뉴욕과 유럽에서 수년간 현장경험을 쌓고 귀국해 2009년 정식당을 오픈했다. 제철 한식 재료에 프랑스 등 유럽 요리기술을 접목해 ‘뉴코리안’이라 이름 붙인 그만의 스타일은 전통 한정식의 틀을 벗어난 자유로운 메뉴로 국내 외식업계 트렌드를 선도하며 진작부터 주목받아 왔다.

“유학을 하고 외국에서 수련을 거치면서 요식업계에서도 새로운 것을 해야 살아남는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한국의 과거 식문화와 현재 먹고 있는 것들이 분명히 다른데, 귀국하면 한국의 식문화를 저만의 재미와 센스를 가미해 분해하고 합체해 ‘뉴코리안’이라는 영역을 개척하자고 마음먹었죠. 우리가 지금 먹고 있는 음식을 재해석하자는 건데 처음엔 미숙했어요. 점차 한국적 컬러를 더해 가면서 반응들이 좋아졌죠.”

국내에서 한창 스타 셰프로 주가를 올릴 무렵, 그는 안주하지 않고 뉴욕 진출을 감행했다. 정식당의 뉴코리안 스타일이 뛰어들 만한 블루오션이 바로 뉴욕이라 생각한 것. “정식당의 캐릭터가 외국인들에게 더 어필하리라고 봤어요. 일례로 작년에 개발한 메뉴 중 김칫국물과 참기름을 배합해 맛을 낸 요리가 뉴욕에서 아주 인기를 끌었어요. 한국인들에겐 평범한 맛이 외국인들에겐 엄청 맛있는 조화로 느껴지는 거죠.”

30대 젊은 나이에 해외에서 자기 이름을 건 레스토랑으로 성공을 거두며 한국을 대표하는 셰프가 됐지만 늘 승승장구한 것은 아니다. “뉴욕점을 처음 오픈했을 때는 전문지들 리뷰가 형편없었어요. 뉴욕이란 도시를 제대로 모르고 겁 없이 덤빈 탓이죠. 하지만 처음부터 평가가 좋았다면 오늘이 없었을 것 같아요. 미숙했던 점을 조금씩 보완하면서 성장할 수 있었으니까요.”

정식당 메뉴를 돋보이게 하는 특징은 톡톡 튀는 센스와 유머감각이다. 떡꼬치 같은 길거리 음식이나 알감자·핫바 등 고속도로 휴게소 간식을 응용한 어뮤즈, 장독대 모양의 초콜릿 디저트 등 한국 식문화에 기발한 아이디어를 보태 요리에도 재미를 추구하는 것이 그만의 스타일이다. “손님들이 좋아할 만한 것을 끊임없이 생각하고,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바로바로 실천에 옮기려고 해요. 아직 못 해본 요리, 접해 보지 못한 재료도 많은데 그런 ‘발견’들이 너무 재미있어요. 미슐랭 별점을 유지하기가 더 힘들다지만 내년엔 별점 3개를 목표로 뛸 겁니다.”

글 유주현 객원기자 yjjoo@joongang.co.kr, 사진 전호성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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