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가 지식 퍼뜨려 세상 바꾸는 ‘IT계 앨빈 토플러’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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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4호 28면

오라일리 미디어의 팀 오라일리 창업자는 지난 20여 년간 정보의 공유와 개방이 인류의 창의성을 북돋워 세상을 보다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 것이라는 신념을 설파해 왔다. 2009년 ‘페이팔 이노베이트’ 콘퍼런스 무대에 선 오라일리. [사진 위키피디아]

지난 일주일간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를 방문했다. ‘글로벌 기업가정신 회의’ ‘스타트업 네이션스 서밋’ 같은 세계 창업계의 주요 행사들이 연이어 열렸기 때문이다. 봐야 할 자료도 많고, 만나야 할 사람도 많았다. 그런 와중에 서울 업무까지 틈틈이 챙겨야 했기에 스마트폰은 생명줄과 같았다. 무선 인터넷을 통한 무료 국제전화는 기본이고, ‘에버노트’나 ‘구글독스’ 같은 클라우드 컴퓨팅 서비스에 각종 자료를 업로드해 놓고 언제든 꺼내볼 수 있어 편리했다. 참석하지 못한 행사의 내용과 분위기는 페이스북·트위터를 통해 실시간 확인이 가능했다. 처음 접하는 단체나 개념에 대해선 각종 검색엔진의 도움을 톡톡히 받았다. 비즈니스 미팅 중 서로 필요한 자료는 그 자리에서 e메일이며 각종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활용해 주고받았다. 각 세션에서도 인터넷을 통한 정보 공개 및 공유와 활용, 글로벌 협업에 관한 이야기는 주요 화두였다. 이처럼 필자를 포함해 세계 100여 개국에서 몰려온 사람들은 ‘웹 2.0’의 세계를 그야말로 온몸으로 실감했다.

세상 바꾸는 체인지 메이커 <18> ‘오라일리 미디어’ 창업자 겸 대표, 팀 오라일리

웹 2.0이란 쉽게 말해 PC가 아닌 인터넷망(World Wide Web)이 지배적 플랫폼 역할을 하는 구조를 말한다. 누군가 ‘판’(플랫폼)을 깔면 수많은 이가 자발적으로 참여해 ‘작품’을 완성하고 새 가치를 창출한다. 예를 들어 뭔가 궁금한 게 있을 때 30년 전 사람들은 종이 백과사전을 뒤졌다. 20년 전에는 CD롬 형태의 전자 백과사전을 PC에 밀어넣어 구동했다. 10년 전, 전혀 새로운 방식이 등장했다. 인터넷망, 즉 웹의 도움을 받기 시작한 것이다. 2001년 1월 탄생한 위키피디아가 대표적이다. 인터넷에 접속한 누구나 자유롭게 정보를 덧붙이고 수정할 수 있는 온라인 백과사전이다. PC가 아니라 웹 그 자체가 정보 교류·통합, 테크놀로지 활용의 중심이 된 거다. 그리고 여기에 웹 2.0이라는 이름을 붙인 뒤 새 시대의 도래를 선포한 일단의 개척자들이 있었다. 그 핵심에 ‘오라일리 미디어’의 팀 오라일리(Tim O‘Reilly·59) 창업자 겸 대표가 있다.

온·오프라인 미디어 그룹인 오라일리 미디어는 새로운 기술·산업 트렌드를 제시하는 굵직굵직한 콘퍼런스들을 열어 왔다. 이 회사가 내세운 모토는 ‘혁신가들의 지식을 널리 퍼뜨려 세상을 바꾸는 것(changing the world by spreading the knowledge of innovators)’이다. 이에 걸맞게 오라일리는 웹 2.0 및 정부 2.0의 창안자이자, 오픈 소스 운동과 자유 소프트웨어 운동의 지치지 않는 리더로서 정보기술(IT) 중심의 경제·정치·사회적 변혁을 이끌었다. 그가 ‘IT업계의 앨빈 토플러’란 별명을 얻은 연유다.

하버드대 수료한 문학도 출신
오라일리는 아일랜드 태생이다. 태어난 지 6주 만에 가족과 함께 미국 캘리포니아로 이주했다. 하버드대를 수료한 전형적 문학도였던 그는 20대 후반 컴퓨팅 기술의 중요성과 미래가치에 눈을 뜬다. 1984년 오라일리 미디어를 설립한 뒤 기술서적 출판에 주력한다. 자신이 컴퓨터 문외한이었던 만큼 각종 기술 매뉴얼을 일반인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수준으로 바꾸는 데 주력한다. 이 기획은 세계적으로 큰 성공을 거두었다. 96년에는 세계 최대 온라인 서점인 아마존닷컴의 과도한 특허 주장에 맞서 공개 비판을 가하고 불매운동을 벌이는 등 지식·특허 공유 분야의 리더로 떠올랐다.

2000년 불어닥친 닷컴 거품 붕괴는 오라일리 미디어에도 큰 상처를 남겼다. 직원의 20%를 해고해야 했다. 이런 상황에서 그는 되려 새로운 가능성을 봤다. 디지털 혁명의 과정에선 창조적 파괴가 일어날 수밖에 없다. 이를 피하기보다 한복판에 뛰어드는 것이야말로 새 트렌드를 선점하는 길이라고 봤다. 그런 고민 끝에 등장한 것이 웹 2.0 개념이다.

2003년 한 회의에서 오라일리 미디어 부사장인 데일 도허티는 “닷컴 거품 붕괴 이후에도 여전히 건재한 아마존·구글·이베이 같은 회사들은 남다른 특징을 공유하자”며 이를 웹 2.0이라는 새 개념으로 묶을 것을 제안했다. 오라일리는 그 ‘남다른 특징’이 무엇인지를 명징하게 간파해 낸다. ‘이전까지와는 전혀 다른 공유 플랫폼’, 즉 ‘웹’이었다. 인터넷만 있으면 언제 어디서나 데이터를 생성·공유·저장할 수 있고, 비즈니스를 펼칠 수 있는 시대가 열린 것이었다. 물론 이를 위해서는 사용자 편의를 한껏 보장하는 빠른 인터넷 속도와 뛰어난 사용자환경(UI), 무엇보다 새로운 철학이 필요하다. 바로 참여·공유·개방의 가치다.

“정보는 나눌수록 커진다”
구글이나 아마존·페이스북을 보자. 사용자들은 자발적 참여와 협업을 통한 창조적 활동으로 각각의 플랫폼을 나날이 풍요롭게 만든다. 이를 공유·개방함으로써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한다. 오라일리는 2004년 최초의 ‘웹 2.0’ 콘퍼런스를 개최해 이런 개념을 널리 퍼뜨렸다. 2006년 미국 시사지 ‘타임’이 올해의 인물로 ‘당신(You)’을 선정하고, 이후 사용자 창작 콘텐트(UCC)가 인터넷 세상의 대세로 자리잡은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는 회사 경영에도 웹 2.0 개념을 적극 도입했다. 예를 들어 이 회사에서 발간하는 전자서적들은 디지털저작권관리(DRM)를 적용하지 않는다. 덕분에 누구나, 어떤 단말기에서나 마음껏 이용하고 공유할 수 있다. 그만큼 판매량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그야말로 ‘바보짓’ 아닐까? 오라일리의 생각은 다르다. 지난해 언론 인터뷰에서 그는 “웹 2.0 관련 논문을 무료 공개했더니 100만 회 이상의 내려받기가 발생했다. 이런 성공을 기반으로 ‘웹 2.0 엑스포’ ‘웹 2.0 서밋’ 같은 행사를 여는 등 지난 8년간 1억 달러 이상의 매출을 올릴 수 있었다”고 말했다. 나눌수록 커진다는 설명이다.

그는 이제 웹 3.0 시대를 말한다. 모든 것이 센서화되고, 사람들이 의도적으로 자신의 위치를 알리거나 뭔가를 입력하지 않아도 행동과 욕구가 절로 감지되는 세상이다. 이미 스마트폰은 인간의 눈과 귀 역할을 하고 있다. 구글은 무인자동차를 개발했다. 의도하지 않더라도 수많은 정보가 개방되고, 공유되고, 재창조되는 세상. 아직 웹 2.0의 개방성에조차 충분히 적응하지 못한 이들로선 가위 두려운 미래다. 공유와 협업의 가치체계를 이제라도 자신의 일과 삶과 조직에 적극 도입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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